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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Aug 19. 2024

이한우의 논어 강의 비판

<논어등반학교 교장> 이 한우의 논어 강의는 일관성과 파격이 있다. 그는 <논어>를 일반적 해석의 틀을 벗어나 <제왕학>으로 해석한다. 텍스트의 해석은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무한히 개방될 수 있다. 이 시대를 지배하는 포스트 모던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방성이 오독과 오해에 대한 변명을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논어>를 제왕학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이한우의 독법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기란 쉽지 않다. 



<논어>를 펼치면 제 일 먼저 대하는 구절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이다. 일찌기 양주동 선생은 ‘면학의 서’라는 글을 이 구절에 대한 해석으로 시작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양주동은 논어의 이 첫구절이 너무나 쉽고 분명해서 오히려 실망했다고 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고 공부가 익어가면서 공자의 이 말에 담긴 깊은 뜻을 음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릇 모든 배움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앎은 그 무엇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과 경이심에서 비롯되고, 그것을 배워가는 과정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이어질 때 최고라는 것이다. 무엇인 가를 알고 배우려 하고, 배운 바를 때때로 다시 익히는 즐거움은 그 의미를 아는 자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한우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를 대 놓고 오역이라 하고, 그 근거는 이런 유의 해석이 그것[之]을 놓쳤는데, 여기서 그것이 가리키는 글자를 대뜸 문(文)이라고 한정짓는다. 사실 이런 해석은 해석 자체를 제한하는 부정적 한계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한정 지어 놓으면 더 이상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해석을 하기 힘들고, 설령 넘어선다 해도 나쁘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때문에 그것은 다양한 해석이 피해야 할 일종의 ‘부정적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이한우는 그것을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네 가지인 문(文) 행(行) 충(忠) 신(信)에서 문(文)이라고 분명하게 규정짓는다. 그는 이런 문을 6경으로 본 주희의 해석 조차 물리치면서 제왕학의 관점에서 ‘흠명문사(欽明文思)’라는 말로 대신한다. 



 “요임금의 제왕다움[德]을 말하는 것입니다. 흠(欽)이란 삼가지[敬] 않음이 없다는 뜻이고 명(明)이란 환하게 밝히지 않음이 없다는 뜻이며, 문(文)이란 (꽃부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것을 밖으로 멋지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英華之發見]이고 사(思)는 뜻하고 생각하는 바가 깊고 멀다는 것입니다.”(진덕수)



여기서 진덕수는 명확하게 ‘문(文)이란 (꽃부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것을 밖으로 멋지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英華之發見]’이라고 말했는데, 이한우는 그것을 ‘열렬하게 애쓰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해석학에서 철학을 시작한 이한우가 이 구절을 잠재된 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해석학적 의미를 '열렬하게 애쓰는 것'이라는 태도 규정 정도로 보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한우는 모든 것을 자기가 이해한 대로 편협하게 해석하고 그것만이 옳다고 해석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런 태도는 연구자가 반드시 피해야 할 태도이다. 



이한우는 그것[之]을 ‘흠명문사’로 규정한 다음 그것의 주체로서 군주 혹은 제왕을 들고 있다. 이쯤 되면 아전인수나 견강부회가 보통 정도를 넘은 것이 아니다. 대뜸 학은 흠명문사이고, 그것의 주체는 나라를 관장하는 군주로 보고, 때문에 논어는 제왕학이라는 식으로 일사천리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과 다른 해석은 다 논어를 잘못 본 것으로 치부한다. 이런 태도야 말로 ‘우물안 개구리’의 오만(hybris)이 아닐까? 그가 제왕학의 예로서 한무제와 동중서를 끌어 들인 것은 한편으로 한학자로 변신한 그의 지식을 과시하는 면이 있겠지만, 보다 큰 문제는 화사첨족(画蛇添足)의 쓸데 없는 짓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뱀을 그리라고 하는데 뱀의 다리까지 그리는 쓸데 없는 짓을 더한 것이다. 



공자의 <논어>를 읽다 보면 공자가 얼마나 배움을 좋아하고 배움에 관한 일화를 많이 담고 있는 지를 알 수가 있다.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말고도 이런 배움에 관한 구절들은 곳곳에 들어 있다. 이런 구절들은 공자의 배움, 혹은 호학의 정신이 결코 특정 시대의 특정 이데올로기에 구속되지 않은 보편적 의미를 띠고 있음을 쉽게 알려준다. 



공자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그가 약관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30세에는 나름대로 입장을 세우고 나이 50에는 비로소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데도 잘 나타나 있다.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길을 가는 친구에게서도 배우려고 하는 태도, 결코 남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공자의 겸손을 말해준다. 



 『논어(論語)』 「공야장편(公也長篇)」이란 말도 나온다. "배우는데 늘 민첩 했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敏而好學 不恥下問)"고 한다.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알고자 하는 데는 어린아이의 호기심 만큼 큰 자극이 없다. 공자의 앎에 대한 욕구는 가히 어린아이의 태도에 가깝다. 



'삼인행필 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받들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논어 술이(述而)



<논어>의 '술이'편에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란 말이 있다. 책을 읽거나 공부에 열중하다 보면 밥 먹는 일도 잊는다는 말이다. 



"안다는 것은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는 不如好之者. 好之者는 不如樂之者) 배운다는 것은 누가 시켜서라서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요, 나중에는 그 일을 스스로 즐기는 경지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배움은 어떤 댓가나 목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으로 배움 그 자체를 추구할 때나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 든 이런 몇 가지 예를 통해서 보더라도 공자의 논어는 위왕지학이라기 보다는 위기지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억지로 세상을 통치하는 군주가 배워야 할 통치 교과서로 만드는 것은 논어의 본래 정신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다. 배움에 대한 이런 공자의 태도는 교조적이라기 보다는 개방적이다. 공자는 배움의 세계에서는 귀천이 따로 없고 상하를 구분하지도 않았고 가방 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개방적인 배움의 태도가 논어를 2천년의 시공간을 넘어서 끊임없이 살아 있는 텍스트로 만들고 있다. 



텍스트의 해석은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 본래 취지를 왜곡해서 특정한 이념이나 독선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만드는 일은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논어>를 읽는 이한우의 방식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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