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인류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대단한 발명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아무리 뛰어 나다 해도 한글을 외면한 점에서 그들은 백치나 다름없다. 만일 그들이 한글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을 적극 사용했다고 한다면 조선의 역사는 한결 달라졌을 것이고, 조선의 근대화도 서구 못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문 숭배에 빠진 조선의 사대부들이 한글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죄과는 참으로 크다. 한글은 20세기 한국의 정보 혁명의 가장 강력한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글을 사용한다고 해서 한글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글 역시 동아시아의 공통의 문화적 자산인 한문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다. 그리고 서구의 근대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만든 학술 용어들 역시 무시할 수가 없다. 만약 한글 전용화 운동을 벌인다고 해서 한문을 배격하거나 일본이 만든 학술용어들을 팽개친다면 정상적으로 학문을 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한문은 중국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2천년 이상 사용을 해온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적 자산이고, 한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강력한 표현 도구이다. 이런 도구를 외면한다는 것은 자신의 수족을 묶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물론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한자들을 솎아낼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다 배격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 논리로 일본이 만든 학술 용어들도 그 자체 우리의 표현을 도와주는 개념적 수단이다. 왜색이라고 해서 그것들을 다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표현 수단들을 현저하게 줄이는 행위일 뿐이다. 오히려 그 위에 플러스 알파를 개척해서 더욱 확장시키는 것이 올바른 학문의 태도이다.
우리말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오류가 있다. 그들은 한글식 용어들을 만들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개별 용어들을 한글화하는 작업에 있지 않다. 개개의 단어들은 집을 지을 때 필요한 벽돌과 같다. 벽돌이 중요하기는 해도 벽돌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설계를 해야 하고, 이 설계도에 따라 개개의 건축 자재들을 배치하고 연결을 해야 한다. 또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숙련된 노동자들도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용어들을 하나의 문장 속에서 연결을 하고 적절하게 배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무엇보다 생각과 사유의 내용을 채우는 일이다. 우리말로 사유를 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개별적인 한글 용어가 아니라 그 용어들의 결합체인 문장과 문장의 연결과 합성 등에 의해 이루어진 사고의 내용이다. 예를 들어 요즘 학생들이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걱정을 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범하는 오류가 있다. "고학년이 북한 이탈 주민에서 ‘이탈’의 뜻을 모른다든지 지진이나 홍수는 알아도 ‘재난’ 같은 상의어나 포괄어를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하는 데 그런 어려운 한자 용어는 사전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과거처럼 종이 사전 말고도 스마트 폰이나 노트북에서 구글로 검색해보면 얼마든지 나온다. 문제는 개별적인 한자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장 속에서 각 단어의 역할과 의미, 그리고 맥락 등을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에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글 용어 몇 개를 만들어서 바꾼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고와 그 사고를 만들어주는 문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우리 철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로 일컫어지는 다석 유영모 선생은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한글 개념들을 여럿 만들고, 이런 용어들을 가지고 노자의 도덕경이나 천부경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다석이 만든 용어들의 예를 들어 보자. 가온, 별(別) · 의(義) · 친(親) · 정(正)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닳(별) · 옳(의) · 핞(친) · 밣(정)’ 빈탕한데, 바탈 등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이런 용어들이 일상에서 거의 혹은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확장성이 전혀 없다는 의미다. 아이러니칼 하게 다석을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라고 말하면서도 대학의 철학과에서는 전혀 그의 사상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아무튼 이런 식어 한글 용어의 주조는 과거 조선 시대 선비들이 한문이라는 문자를 독점했던 것처럼 한글을 소수의 사람들의 독점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다석이 쓴 글이나 그가 번역해 놓은 글을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다. 그것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다시 현재의 일상 언어로 재번역을 해야만 할 정도이다. 한글 용어들을 시나 문학등 예술적 차원에서 주조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지 몰라도 학술적 용어들을 이런 식으로 만든다는 것은 소통하기도 힘들 뿐더러 일종의 언어 독점주의나 다름이 없다. 소수의 언어 독점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실 때 '널리 배우고 익히라'는 정신과도 상치되는 것이다.
개별적인 우리말 언어를 발굴해서 널리 사용토록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말 문장과 우리말 사고 체계를 표현할 수 있고 또 그런 것들에 기초해서 뛰어난 문학 작품이나 학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을까?한글 이상으로 한글로 엮어낸 작품과 사상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data:image/svg+xml,%3Csvg
모든 공감:
4
회원님 및 외 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