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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변변: 이혼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을까요?
구제님: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냈는데 남편이 목욕할 때도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가고.. 태도가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흑흑.. 남편이 주중에 다른 여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더라고요. 남편이 그 x이랑 부부행세를 하고 있었어요. 
변변: 배신감에 많이 힘드시겠어요. 부정행위를 확신하게 된 증거는 무엇인가요?
구제님: 제가 자려고 누웠는데 제 휴대폰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울리더라고요. 그래서, 휴대폰을 열었더니, 글쎄, 그 미친 여자가 저더러 남편과 갈라서라고 하면서... 남편과 포옹하는 사진을 문자로 보내왔어요.






 바람피운 사람이 불륜을 숨기고 발뺌하는 얘기는 많이 들어 봤다. 그런데, 오히려 불륜사실을 까발린다고? 요즘 들어 상간자들이 그런 간 큰 일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전에는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소송을 할 때에 바람피운 배우자 쪽에서 먼저 사과를 하고 합의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자와 함께 불륜에 동조한 상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요즘은 바람피운 쪽이 오히려 더 당당하고 법대로 하자고 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 걸까?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폐지가 흐름을 바꿨다. 예전에는 형법상 간통죄가 존재했기 때문에 외도로 성관계까지 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했었다. 그래서, 간통죄로 고소를 당한다는 것이 바람 남녀들에게는 매우 큰 리스크였다. 비록 실형을 사는 경우가 많지 않고 집행유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간통죄가 형법상 벌금형 규정이 없고 실형 규정만 있었기 때문에 검사가 기소하면 무조건 형사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큰 심적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당시에는 실제로 간통으로 경찰 신고를 하면 경찰들이 모텔로 출동하여 간통의 증거를 확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2015년 헌법재판소는 간통죄 위헌 판결을 하였고, 간통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간통죄가 폐지되던 날 콘돔회사의 주가가 오르고, 성인나이트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간통죄가 존재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접속이 금지되었던 ‘애슐리 매디슨’ 이 영업을 개시했다. ‘애슐리 매디슨’ 은 기혼남녀 불륜 알선 사이트인데 간통죄 폐지로 간통 방조죄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자 대대적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인생은 짧다. 바람피워라”라는 카피라이트와 함께 석 달만에 66만 명의 한국인 회원을 확보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에 반감을 가진 해커가 ‘애슐리 매디슨’ 사이트를 해킹하여 가입자의 명단이 공개되었는데, 전문직, 공무원뿐 아니라 종교인도 포함되어 있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렇다. 간통죄 폐지 이후 불륜에 대한 죄의식이 약해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간통죄가 폐지되자 바람피운 배우자에게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가장 큰 무기가 사라졌다. 배우자의 불륜외도에 시원하게 고소로 응징할 수도, 형사합의를 조건으로 협상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배우자의 배신으로 피가 끓고 모든 재산을 빼앗고 내쫓고 싶지만 위자료 몇 천만 원을 받고 이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더 이상 간통죄가 존재하지 않기에 경찰이 나설 일도 없게 되었다. 결국, 불륜외도 증거를 잡는 일도 직접 탐정이 되어 발 벗고 나설지, 비싼 비용과 법률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흥신소를 고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졌다. 


 바람피우기 딱 좋은 날이다. 때문에 불륜남녀들은 위자료를 적당히 주고 합의해서 이혼을 하고, 불륜 상대와 감히 재혼하겠다는 전략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간통죄가 폐지된 마당에 첩이 본처가 될 수 있는 희망을 꿈꿔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제님(求濟, 구하여 건너게 하다는 뜻의 변변이 운영하는 법률사무소 상호에서 유래한 의뢰인들에 대한 애칭이다)은 상간녀에게 미쳐 자녀들도 버리고 간 남편이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불에 기름 붓는 격으로 상간녀는 “어서 남편과 이혼하라. 니 남자는 내 거다” “이혼 안 하면 내가 아는 조폭을 불러서 너와 아이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주변인들에게 불륜사진을 공개하고 알리겠다며 구제님을 괴롭혔다. 뭐가 반대로 돼도 너무 반대로 되었다. 구제님은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었고, 몰라보게 말라갔다. 이혼이냐 결혼 유지냐.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서 구제님은 매일 생각이 휘청이셨다. 


 나는 구제님에게 현재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구제님은 “아이들이 부모 때문에 상처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잘 자랐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하셨다. 나는 구제님과 남편의 재산상황을 체크하였다. 다행히 자녀들과 살고 있는 집은 구제님 명의로 되어 있었다. 남편이 평소에도 업소 방문이 잦고 여자 문제가 많다 보니, 하나씩 발각될 때마다 재산 명의를 구제님에게 넘겨주신 것이었다. 나는 묘안을 제시했다. “만약 이혼이 급하지 않으시다면, 남편에게 이혼소송을 하지 말고 상간녀에 대해 위자료 소송만 하시는 건 어떨까요?” 구제님은 “그렇게 해도 돼요?”라고 반색하시더니, 설명을 듣고는 이내 자녀들을 위해 기꺼이 이혼을 미루겠다고 하셨다. 


 재산의 대부분이 구제님에게 있는 상황이라면, 남편과 이혼을 할 경우 구제님이 남편에게 오히려 재산분할로 돈을 내주어야 한다. 남편에게서 받을 수 있는 위자료는 고작 몇 천만 원인데,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금은 몇 억이 될 수 있다. 내가 배우자의 불륜으로 이혼해야 하는 것도 억울한데, 재산분할로 오히려 돈을 줘야 한다고? 위자료는 결혼기간 중 배우자에게 끼친 잘못으로 정신적 고통을 준 것을 손해배상해주는 개념이고, 이와 별개로 재산분할은 혼인 중 형성 유지한 재산을 기여한 바 대로 나누는 청산의 개념이기 때문에, 유책배우자도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다. 





 만약, 바람피운 남편에게 재산분할을 해주어야 한다면, 구제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살 집을 구하는 것조차 요원해진다. 그래서 변변은 이혼을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과 재산을 지키는 방법을 권했다. 남편과 이혼을 하지 말고 상간녀에 대한 위자료 판결만 우선 받아두는 방법이었다. 바람난 여자에게 미친 남편이 이혼청구를 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위자료 판결을 받지 않고 안심하고 있다가, 세월이 흘러 남편이 오히려 구제님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거짓 주장을 하며 부당한 이혼청구를 해 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판사는 외도 시기에 견주어 오래전 과거의 외도는 이미 용서되었거나 혼인파탄의 직접적 원인이 아닌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반면, 오히려 근래에 구제님이 잘못한 부분들이 책 잡혀서 그것이 파탄의 직접 원인으로 평가되거나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이 결혼은 이미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이 되었다고 보아 이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리 상간자에 대한 위자료 승소 판결을 받아두면 배우자가 이혼소송을 해오더라도 이혼소송을 기각시키는데 매우 유리하기 때문에 매우 요긴하다. 위자료 판결문이 만능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바람피운 배우자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하게 되었을 때 억울한 이혼을 막아주는 치트키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상간녀가 협박 메시지를 보내며 구제님을 불안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처가 먼저 필요해 보였다. 변변은 문자메시지를 근거로 상간녀를 협박죄로 고소하였고, 상간녀에게 부정행위로 혼인을 파탄의 위기에 이르게 한 점에 대한 위자료 소송을 하였다. 기세 등등하던 상간녀는 형사고소를 당하자 협박과 욕설을 멈추었다. 구제님의 남편은 구제님이 이혼소송을 먼저 제기할 거라 예상했으나, 구제님이 이혼청구를 하지 않자 사면초가 상태가 되었다. 상간자에 대한 위자료 소송이 구제님의 승소로 끝나고 나서 몇 달 후, 어서 이혼을 하고 상간녀와 결혼을 하고 싶어 안달인 남편은 예상대로 이혼소송을 해왔다. 하지만, 유책배우자의 이혼소송이 받아들여질 리가 있겠는가. 이혼소송 역시 구제님의 승리로 끝났다. 





 구제님은 남편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지만, 그분들의 시작에도 역시나 사랑이 있었다. 구제님은 남편분의 호탕함과 카리스마 있는 추진력에 반해 결혼했다고 하셨다. 남편은 버스 안에서 만난 구제님에게 반해 구제님을 끈질기게 쫒아다니면서 구애를 하였다. 구제님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남편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싹싹하게 말도 잘 붙이고 잘 어울리는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구제님은 그 모습에서 자신과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청산유수로 여자의 마음에 드는 말만 쏙쏙 골라 잘도 하였다. 어디를 가서 데이트 하자, 무얼 사주겠다 등등. 갑자기 만남이 캔슬되거나 흐지부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채 넘어가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사정이 있겠지 하며 그냥 구제님이 이해해주고 넘어갔다. 구제님은 자신을 더 사랑해주는 남자와 만나면 행복할 것 같아 결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여자에게도 매력 발산을 하고 다니는 끼 많은 남편. 결혼하니 가정은 뒷전이고 유흥을 즐기느라 늦은 귀가와 외박이 비일비재. 따져 물으면 청산유수로 변명을 하였다. 사업상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여자가 바가지를 긁으면서 남자 앞길을 막는다고. 여자 문제로 쓴 각서만 다섯 장이 넘었다. 또 여자 문제를 일으키면 양육권과 모든 재산을 포기한다고 그럴듯한 각서를 남발했지만,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하지만, 각서는 참고자료일 뿐, 법원에서 그 각서대로 남편에게 재산분할을 모두 포기하라고 판결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구제님이 이혼을 하게 된다면 재산분할은 기여도대로 나누어 정산해야 하고, 위자료를 좀 더 챙겨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남편은 이러한 사실을 알았고, 각서에서 숱하게 했던 약속을 깨뜨리면서 이혼과 함께 당당히 재산분할도 요구하였다. 구제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져버렸다. 






 바람피우는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굳이 이 사례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연애기간 중에 바람피우는 사람을 과감히 손절해야 한다는 것은 이견이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바람을 피울지를 미리 알 수 있었다면 구제님의 결혼생활이 이렇게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제님에겐 이를 예측할 수 있는 어떠한 단서도 없었을까?


 변변은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단서가 있다. 그 단서를 예민하게 수집하면 결과를 예측해낼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이유로 이를 눈감아주고 타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는 사람일수록 더 까다롭게 의심하고 따져봐야 한다. 결혼할 사이니까 ‘착한 사람, 이해를 잘해주는 사람’이 될 것을 자처하며 스스로 을(乙) 질을 해서는 안된다. 까칠하게 상대방을 충분히 검증한 다음에 착한 남자와 결혼한 다음 착한 아내가 되어도 늦지 않다.


 우리 구제님은 연애를 할 때 남편의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대해 관대하지 않았어야 했다. 갑자기 캔슬되는 약속에 대해 의심을 해보고 추궁하면서 양다리를 걸치는 여자의 존재나 유흥업소 출입사실의 실마리를 찾아 파악했어야 했다. 이를 간과한 채 결혼한 남편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두고, 나이트에서 부킹 한 여자와 놀아나기 일쑤였고, 구제님과의 약속과 신뢰를 가벼이 여기던 남편은 가정을 지키겠다는 혼인서약도 가벼이 깨버렸다. 약속을 행동으로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약속을 변명으로 때우려는 사람은 과감히 손절해야 한다. 

이전 03화 모텔은 갔지만 대화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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