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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혼을 응원해  

                   기정폭력 이혼소송 실전보고서

변 변
 안녕하세요. 저는 이혼소송과 아동학대사건을 많이 다루는 변호사입니다. 저희 의뢰인들을 위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사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가정폭력이 있는 경우에 불가피하게 이혼을 하는 것이 차선책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아이에게 이혼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요. 아이에게 상대방 배우자에 대한 잘못된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이의 자존감의 한축을 무너뜨릴 수 있기에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주어야 좋을지 오박사 님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오은영 박사님
아주 의미 있는 질문입니다. 정신과에서는 실수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폭행을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설령 일회적인 경우라도 이혼을 하는 것이 맞다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되었을 때에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큰 고통을 주게 되고,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때 엄마는 아이에게 아빠와 이혼하는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빠를 험담하는 것도 안 되지만, 아빠를 미화하는 것도 안 돼요. ‘아빠의 폭력적인 행동은 문제이고, 그건 아주 어른스럽지 못한 것이다. 그 문제가 고쳐지지 않고 있고 그것이 너를 위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엄마는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빠와 따로 살 수밖에 없다’라고 이혼의 이유를 정확히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하고 아이가 물을 수 있습니다. 그때, ‘누구나 아이를 낳으면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근본적으로 갖게 된다. 그래서 아빠도 분명 너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거다’라고 얘기해주면 됩니다.





 “나 성공했어!” 둘째 딸의 기저귀를 갈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오은영 박사님의 책을 내밀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정말? 대박이다! 너무 대단해!” 나는 성공했다는 표현이 부끄럽지 않을 어려운 도전을 해낸 남편에게 궁디 팡팡 칭찬을 해주었다.


 당시 오은영 박사님은 신간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출판 기념 북콘서트를 열어 전국에 있는 독자들을 만나고 계셨다. 상담을 하려면 10분당 9만 원의 상담료와 1년 이상 대기를 감수해야 한다는 소문이 났을 정도로 바쁘신 분, 그러나 이를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만나 뵙기를 갈망하는 엄마들이 줄을 섰다는 그분, 누구나 만나기를 염원하지만 아무나 만날 수 없는 분, 육아의 신 오은영 박사님. 심각한 문제행동을 하던 아이를 금쪽 처방으로 180도 달라지게 만들어주는 오은영 박사님은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에게는 실로 영웅이었다. 때문에 박사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북콘서트를 예약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엄마들 사이에 20초 만에 입장권이 매진되어 클릭 한 번 못하고 좌절했다는 예약 실패담이 무성한 가운데 공돌이 출신, 컴퓨터 좀 다룰 줄 안다고 평소 자부하던 남편은 ‘오은영 북콘서트 맨 앞 좌석’이라는 크고 빛나는 별을 내게 따주었던 것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북콘서트 방청을 대비하여 남편이 고심 끝에 인터넷 최저가 주문했을 오은영 박사님의 신간을 품에 안고 사인을 받을 생각에 설레어하면서 강당으로 향했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방청인원에 제한이 있었음에도 결석 한 명 없이 육아에 고민과 관심이 많은 부모들로 행사장은 들떠있었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라는 주제에 맞게 오은영 박사님은 육아 대화법의 중요성을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힘주어 말씀하셨고, 방청객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북콘서트는 마지막에 예정되어 있던 저자와의 질의응답 시간만을 남겨놓고 절정을 향해 흘러갔다.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이 이 질의응답 차례를 학수고대하고 왔을 것이었다. 난 무슨 질문을 하지? 고집쟁이 둘째 딸, 떼쓰기 동생한테 꼬집히고 억울함에 눈물짓는 첫째 딸의 얼굴이 연이어 떠올랐다. 하지만, 아른거리는 두 딸들의 얼굴을 뒤로하고, ‘저요’ 하며 손을 번쩍 들어 오은영 박사님에게 내가 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엄마의 이혼을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요?



 이혼소송에 관심을 갖고 상담과 소송에 몰두했던 십여 년 전, 나에게 내적 갈등을 일으켰던 화두가 있었다. 부부만 놓고 보았을 때에는 이혼을 하는 것이 정답인데, 과연 아이에게 결손가정을 주는 것이 부모로서도 최선의 선택일까? 특히, 돌도 안 된 아이를 둔 엄마가 이혼을 하러 왔을 때에는 이혼을 하라고 권하는 게 맞는지 깊은 고민에 빠지곤 했다. 그런 나에게 ‘네가 틀리지 않았어’라는 대답을 주는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찾아온 A구제님(求濟, 구하여 건너게 하다는 뜻의 변변이 운영하는 법률사무소 상호에서 유래한 의뢰인들에 대한 애칭이다)과의 상담이 그것이었다. 스프레이로 고정시킨 파마머리에 거친 피부, 이마와 눈가의 주름이 60대로 향하는 나이를 짐작케 하는 어머님, 하지만 톤 다운된 붉은색의 립스틱을 바른 입 모양새가 자존심과 고집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변호사님. 저는 수 십 년간 가정폭력을 당해왔습니다. 허구한 날 구둣발로 차이고, 던지는 유리병에 맞아 피를 흘리고, 과도를 들고 따라 나오는 남편을 피해 한 밤 중에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아침에 들어가기를 반복했어요.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었을 텐데 구제님이 진작 이혼하지 않았던 이유에는 어린 아들과 딸이 있었다고 했다. A구제님은 이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참자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고 지금은 자녀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진작 이혼할 걸 그랬어요.


 A구제님은 분명 자녀들을 위해 결손가정을 만들지 않고자 인내와 희생을 하며 이혼을 미루고 가정을 지켜내셨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후회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걸까? “변호사님, 실은 우리 딸이 오랜 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딸이 어느 날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왜 진작 아빠와 이혼하지 않았어? 나는 지옥 속에 살았어. 엄마가 나를 방치해서 내가 이렇게 된 거야’ 라고요.” 구제님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하소연하셨다.





 변변이 만난 가정폭력 피해 가정의 모습은 상처로 얼룩져 있었다. 폭행을 당하는 배우자는 물론이고, 자녀들 역시도 아동학대 피해를 함께 입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망가져 있었다. 가정폭력이 일상화된 가정에서 아동들은 폭력의 가해자인 부모를 롤 모델링하고 답습하여 친구들에게 욕설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여 학교생활을 원만하게 해내지 못하거나, 정서적으로 ADHD 증상을 보이는가 하면 고립감과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며 더 큰 문제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내성적이고 심약한 성격인 경우 틱장애 등의 불편함을 겪거나 불안과 공포를 호소하며 사회적 관계 맺기에 큰 어려움을 겪고, 극단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관도 건강하지 못하다. 딸들의 경우 가정폭력을 하는 아버지를 경험하고 이를 피해 성년이 되자마자 도피하듯이 결혼을 하기도 하고, ‘나는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나 엄마처럼 살게 될까 봐 두렵다’ 혹은 ‘내가 가정을 이루면 아버지같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가장이 될 것 같다’며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보였다.



 그런데, 더 큰 비극은 자녀들이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성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녀들은 폭행하지 않고 아내에게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더 그런 모습이 관찰된다. 자녀들은 “엄마, 왜 아빠를 화나게 했어? 엄마가 좀 잘하지 그랬어. 엄마만 참으면 돼” 라며 엄마를 비하하고,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가족들로부터 무시당하면서 가정이 분열되고 와해되는 이중고를 겪게 되기도 했다.





 B구제님은 가정폭력을 하는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혼소송을 하셨다. 경제적 형편이 되지 않아 단칸방을 구해 나왔고, 여건상 아이들을 데려올 수 없었다고 했다. 별거기간 동안 남편이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었고, 남편은 B구제님에게 면접교섭을 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B구제님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운 별거를 하였고, 양육권을 가져오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 B구제님. 남편이 B구제님을 아동학대로 고소한 것이다. 경찰은 엄마에게 구타당해 피를 흘리고 멍이 들었다는 아들의 진술까지 확보해 둔 상태였다. 아들은 평소 학교에서 잦은 거짓말과 도벽, 폭력성으로 문제를 일으켰었고, B구제님도 비행을 일삼는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화를 내며 훈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멍이 들고 피가 날 정도로 때린 일은 결코 없었다며 눈물을 흘리는 B구제님. 친엄마를 무고하는 아들의 거짓 진술 뒤에는 절대 권력자인 가정폭력 아버지의 종용과 아버지에게 절대복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적자생존의 생태계가 있었다.


 자녀를 위해 이혼을 할 수 없다고 고민했던 구제님들이 몇 년 후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이혼해야겠다고 찾아오셨다. 아이들의 상태가 너무 나빠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해를 준다고. 가정폭력 경험이 몇십 년 되신 분들도 장성한 자녀들과 함께 찾아오셨다. 보통은 자녀들이 어머니의 손을 잡아 끌고 와 우리 어머니 이혼을 하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셨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자신 있게 조언할 수 있게 되었다 “구제님, 최선은 이혼하지 않고 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최악은 이혼하지 않고 매일 폭언과 폭력이 오가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며 사는 것, 차선은 이혼을 하고 자녀들에게 행복한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최선책이 안된다면 차선책이라도 선택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이혼하면 우리 아이가 결손가정 출신이라고 손가락질당하지 않을까? 나만 참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엄마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은 이미 그와 결혼하기 전 연애 중 혹은 동거 중 그 어느 시점부터 물리적 폭행이나 정서적 폭행을 당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돌변하는 눈빛, 고성으로 거칠게 내지르는 폭언,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돌발행동, 그 시그널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하지 않았는가? 그때도 지금과는 다른 어떠한 변명을 하며 당신은 타협했었다. ‘정신과에서는 실수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폭행을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설령 일회적인 경우라도 이혼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는 오은영 박사님의 조언은 개인의 폭력성향은 쉽게 수정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가정폭력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길 강요받으며 가정 내 강자에 의해 약자에게 가해지는 비극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사랑이든, 두려움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가정폭력을 용서하면 가정폭력을 용인하는 호구가 되고,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폭력을 용인하는 호구에게 재차 폭력을 행사하며 폭력의 역학관계를 고착화시킨다.


 변변은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가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를 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 과정에서 정상적인 범주의 합리적인 대화가 오가는지 혹은 폭언이나 돌발행동이 오가는지를 관찰하고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 특히, 데이트 폭력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그 즉시 손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 한 사람의 희생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파국이 당신의 결혼생활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다.


 A구제님은 긴 시간 본인의 아픔을 토로하셨지만, 결국 이혼을 하지 않으셨다. 자녀가 성인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하셨음에도 이혼을 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더 남아 있었던 걸까? 그분을 다시 만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어머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벌주지 마세요.
어머님의 이혼을 응원합니다


 tel:  010-4332-1091   / 051)506-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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