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향에 담긴 다정한 위로의 농도
잔 속의 고요가 식어간다.
나는 아직, 하루를 데운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그 사이로 고요히 깨어나는 마음.
향이 번지는 방향을 따라
생각이 천천히 흩어지고,
손길에 닿는 온기가
내 안의 공허를 감싸준다.
습관처럼 내린 커피가
오늘의 첫 다짐이 된다.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듯,
나는 하루를 다시 품는다.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오늘도 커피를 내린다.
줄이겠다고 말한 지는 꽤 됐고,
커피 대신 홍차를 마시겠다고 다짐한 날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다짐은 왜
또 커피를 마시면서 떠오를까?
가끔 그런 게 있다.
‘끊는다’는 말은 언제나 너무 단정해서
도리어 다시 돌아가는 이유가 되곤 한다는 걸.
아침을 열며,
나는 또 머그컵을 꺼내쥔다.
진한 향이 주는 안도감은
커피가 아니라 나에게 말했다.
“오늘도 다정히 살아보자고.”
오래 전의 나는 쓴 맛을 견디지 못했다.
한때는 믹스 커피만을,
한 때는 연한 아메리카노를,
또 어떤 시절엔 시나몬 가루를 조금 섞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쓴맛을 ‘맛’이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
견딜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 맛이
내 하루와 닮았다고 느껴져서.
내 커피는 진하다.
텅 빈 속에 부딪히면 쓰고,
조용한 마음에 들어오면 따뜻하다.
쓰고 따뜻한 마음.
그게 지금의 나인 것 같다.
요즘 누군가 내게 묻는다.
“그렇게 매일 글을 쓰는데 힘들지 않아요?”
가만히 미소 짓는다.
사실, 매일 쓰는 게 아니라
매일 숨 쉬듯 쓰는 중이라고...
그리고 나에게 글은
'말 못한 설움을 잊게 해주는 마음의 진통제'라고..
누군가의 글을 읽다 눈시울이 적셔 오고
댓글 하나에 가슴이 벅차 오르고
내 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았다는 말에
하루가 달라지는 걸 보면,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나를 살아내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커피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늘도 진하게 내렸다.
이건 어쩌면
카페인이 아니라
'위로의 농도'일지도 모른다.
커피의 쓴 향이 남는 이유는
결국, 그 안에도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너무 진한 하루일지 모를 이 시간,
당신의 커피는 오늘 어땠나요?
"오늘도 사소한 순간들이 나를 품어준다."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작가의 말>
글을 쓰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과 닮아 있다.
거창하지 않고,
다만 하루를 데우는 작은 의식.
한 모금에 담긴 하루의 쓴맛은
견디려 애쓰지 않아도
'나를 안아주는 뜨거운 위로'가 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어느덧 4개월.
커피 향처럼 익숙해진 글벗님들의 응원과 온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이 오늘 글벗님들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데워주길 바라봅니다.
《숨, 그 결로 나를 품다》는 말 못한 설움을 삼키는 순간에도 내 안의 숨결을 지켜내는 기록입니다.
#숨결에세이 #커피에담긴하루 #일상글쓰기 #숨처럼쓰다 #나를품는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