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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남향, 영혼을 짓는 건축가>

우리는 모두 자신의 영혼을 짓는 건축가다

by 숨결biroso나

가장 추운 계절에도 나를 감싸 안는, 내면의 따스한 터를 일구는 사색에 대해여



겨울 아침,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한 모금의 따뜻한 차를 마신다. 찻잔을 감싼 두 손에 온기가 스민다. 그 작은 열이 몸보다 마음을 먼저 녹인다.

삶이 따뜻하고 조용히 흘러가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스스로 세운 흔들림 없는 평온의 구조, 열린 기운이 깃든 내면의 터에서 비롯된다.







인생을 걷다 보면 예고 없이 몰아치는 바람이 있다. 한밤중에 문득 깨어나는 불안, 나 자신을 겨누는 자기 의심의 냉기. 그 바람은 집의 틈새로 스며들어 난로의 온기를 앗아가듯, 우리 마음의 가장 얇은 층을 파고든다.

그때의 풍경을 기억한다. 찬 바닥에 웅크린 무릎, 손끝에 닿는 서늘한 공기, 귓가에 맴도는 자책의 목소리들. 우리는 그 찬 기운과 맞서 싸우려다 오히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다. 옛사람들은 '동기감응(同氣感應)'이라 했다. '마음에 냉기가 가득하면 삶의 풍경도 그 냉기에 물든다'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가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기보다, 등을 돌려 기대어 쉴 수 있는 ‘산’을 찾아야 한다.

우리 마음의 산은 거창한 업적이 아니다. 그것은 세월이 쌓아 올린 근원,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자존의 자리이다. 그 산의 품에는 조용했던 승리의 기록이 숨어 있다.

누구의 시선에도 들키지 않았던 용기, 모든 비난 속에서도 자신을 배반하지 않았던 진심, 그 모든 순간이 흙이 되어 이끼가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탱한다. 산은 말이 없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가장 강력하게 바람을 막아준다.

나는 그 산의 등 뒤에 기대어 선다. 세상의 소음이 잔잔히 멀어지고, 고요한 숨이 내 안에 돌아온다. 그 침묵 속에서 알게 된다. 내가 걸어온 세월이 결국 , 내 마음의 지형을 빚어온 것이었다는 걸.

단단한 산을 등에 두었다면, 이제 시선을 앞으로 돌려 물을 마주해야 한다. 풍수에서 물은 생명력과 재물의 상징이지만, 영혼의 풍수에서 물은 유연함과 수용성을 뜻한다. 물은 담긴 그릇의 모양에 자신을 맞춘다.

그처럼 우리는 세상의 다채로운 기운과 사람, 예기치 못한 순간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의 남향은 햇살이 오래 머무는 자리다. 그곳은 희망이 아니라 결단이다. 어둠 속에서 빛이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빛이 가장 잘 드는 쪽으로 몸의 각도를 살짝 돌려세우는 일.
남향의 마음은 작고 사소한 것에서 빛을 찾아낸다. 곁의 사람의 조용한 응원, 오래된 사진 속 웃음, 무심코 본 하늘의 무지개 같은 것들.

그런 순간들이 내 안의 물길을 다시 흐르게 한다. 고여 썩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나아가게 한다. 남향을 마주한 물은 태양의 금빛을 받아 가장 찬란하게 반짝인다. 단단한 산의 보호 아래 물의 유연함이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우리가 마음의 배산임수를 세우는 이유는 하나다. 좋은 터에 뿌리내린 생명은 좋은 기운을 피워 올리기 때문이다. 내면의 터가 따뜻하고 단단하면 세상은 그 에너지를 감지하고 반응한다. 이것은 복이 아니라, 마음이 부르는 파동이다.

내가 친절과 여유의 기운을 내보내면 그 파동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고, 다시 내게 선의의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내가 짓는 마음의 집이 남향이라면, 내 아이도, 내 친구도, 내 곁의 사람들도 그 따뜻한 온기를 느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짓는 현재의 풍수가 미래의 복이 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영혼을 짓는 건축가'다. 하루를 살아가며 어떤 돌을 쌓을지, 어느 방향에 창문을 낼지는 결국 우리 자신이 결정한다.

냉랭한 불안의 돌 위가 아니라, 자존과 희망의 땅 위에 따뜻한 남향의 집을 짓는 일. 그것이 훗날 우리가 세상에 남길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한 명당의 흔적일 것이다.







풍수는 집터를 고르는 학문 같지만, 결국은 마음의 터를 다루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풍수의 원리인 ‘동기감응’을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적용해 쓴 글입니다. 나의 내면과 세상이 조용히 공명하는 방식을 탐색하며, 삶의 기운을 맑고 따뜻하게 채워나가는 인생의 걸음을 함께 내디뎌봅니다.


우리 마음의 ‘배산’은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내면의 힘입니다. ‘임수’는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입니다.

지금 차가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면, 잠시 등을 돌려 등 뒤의 산을 느껴보세요. 그 작은 움직임이 삶의 온도를 바꿔줄지도 모릅니다.



''의 기운은, 우리가 지은 따뜻함 속에서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by 《내 마음의 풍경》 ⓒbiroso나.




우리가 만든 따뜻한 기운이 주변에 아름답게 감응하기를. 글벗님들의 하루에도 따뜻한 남향이 깃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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