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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스민 마음, 온돌의 고요한 위로>

세상의 모든 불안과 긴장을 녹이는 가장 낮은 곳의 온기

by 숨결biroso나

세상의 모든 불안과 긴장을 녹이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의 온기에 대하여



날씨가 서늘해지면 숨부터 달라진다. 아침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는 그 한 호흡이, 어느새 겨울 문턱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럴 때면 뜨끈한 아랫목이 먼저 떠오른다.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새겨져 있던 어떤 본능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쓸쓸해질수록 몸은 자연스럽게 낮은 곳을 찾는다. 바닥 가까이 내려앉아야 비로소 하루의 긴장과 서늘함이 조금씩 흩어진다.

추운 겨울 뜨끈한 온돌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살아온 계절들이 겹겹이 떠오르고, 그 시간들 사이에 남아 있던 작은 틈들이 조용히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겨울로 들어서는 공기는 사람을 괜히 돌아보게 만든다. 지나온 인생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듯 되짚게도 한다. 낮아지고 차갑게 식어가는 이 계절에야 비로소 마음 깊은 곳의 온도를 다시 헤아릴 수 있다.







현대인의 삶은 끊임없이 높이를 재고, 정상만을 향해 서둘러 달려가는 수직의 경주와 같다. 서 있는 모든 순간은 미세한 긴장의 연속이며.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중력에 저항하며 꼿꼿함을 유지하라는 세상의 명령을 듣는다. 이 자세는 마치 찬 바람이 불어오는 길목에 위태롭게 서 있는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와 같아, 조금만 더 흔들리면 부러질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효율을 논하고, '성장' 이라는 이름 아래 가슴속의 차가운 불안을 훈장처럼 달고 사는 존재가 되어 마음은 이미 수평을 갈망하는데, 굳어버린 척추는 수직의 감옥에 갇혀 홀로 고독하게 진동한다. 이 압박감에 지쳐 쓰러질 때, 그 넘어짐이야말로 우리 존재가 본능적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찾으려는 수평의 위로를 향한 간절한 몸짓일 것이다.

이 때,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주는 공간은 늘 변함없이 넓고 평평하게 펼쳐져 있는 바닥이다. 바닥에 기대어 주저앉는 행위는 단순한 피로 해소를 넘어선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수직적 질서를 거부하는 가장 정직하고 용감한 선언이다. 불안한 균형을 위해 애쓰던 근육들이 일제히 해방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척추에 집중되던 모든 압력이 지면이라는 묵직한 어머니의 품 위에 고르게 분산된다. 바닥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무게와 그림자를 묵묵히 받아주며, '이제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아도 좋다'는 고요한 허락을 건넨다.


한국의 가장 깊은 안식은 한국의 온돌 문화라는 독특한 철학 위에 따뜻하게 스며들어 있다. 온돌은 단지 방을 데우는 기술이 아니라, 차가운 지면에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수평의 위로를 완성하는 치유의 방식이다. 이는 소란스러운 난방 기구와 달리, 소리 없이 은근하게 뿌리로부터 피어오르는 열이다. 온돌의 따뜻함은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방바닥 전체로 깊게 스며들어, 한겨울 깊은 산장에서 만난 따뜻한 벽난로처럼 우리의 존재를 천천히 감싸 안는다.

그 온기는 마치 가장 진실한 친구의 조용한 다독임과도 같다. 피부 겉만을 데우는 것이 아니라, 몸의 가장 깊은 곳, 골수에 스며든 차가운 한기와 오랜 긴장을 풀어낸다.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등뼈를 타고 척추 마디마디로 파고드는 그 묵직하고 깊은 따스함 속에서 비로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안을 녹여버릴 수 있게 된다. 이 고요한 열기 속에서 세상의 소음 대신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에 귀 기울이며, 땅에 깊이 뿌리내린 듯한 심리적 정착감을 회복할 수 있다.

온돌바닥은 또한 가장 평등하고 겸손한 공동체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위에서는 몸의 너비만큼 공간을 함께 나눈다. 모두가 같은 수평의 온기를 나누며,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피어나는 따뜻한 평등함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 온기가 주는 포근함 속에서 우리는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라는 공동의 온기 속에서 마음의 외로움을 녹여낸다.

바닥에 몸을 뉘이는 순간, 세상의 시간과 소리마저 수평이 된다. 수직의 세계에서 시끄럽게 울리던 경쟁의 소음은 바닥에 닿아 아득한 물밑의 파동처럼 잦아든다. 높이에서 비추던 강렬하고 단정적인 빛은 바닥에 누워 바라보면 부드러운 긴 그림자로 늘어지며 우리를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의 속도가 느려지고, 우리는 비로소 외부의 시간표가 아닌 몸의 숨결이라는 가장 정확하고 고요한 시계 소리를 듣게 된다. 이 감각의 침묵 속에서, 오직 자신과의 대화만이 선명해지는 내면의 정거장에 도착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찾아 헤매는 진정한 안식처는 외부의 화려한 목적지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가장 낮은 바닥에서 시작된다. 몸을 수평으로 뉘이고, 온돌처럼 은근하게 피어나는 내면의 고요한 온기에 기대어 스스로를 품어주는 일이다.


겨울 문턱의 고요함 속에서, 인간은 낮은 자리에서 가장 깊은 안정을 찾는 존재임을 다시 깨닫는다. 세상이 끊임없이 서 있으라고, 버티라고, 더 높이 올라가라고 요구할 때 우리는 잠시 낮아져야 한다. 몸이 먼저 바닥에 닿을 때 마음은 비로소 따뜻해질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이 우리에게 꼿꼿한 수직을 요구하며 지치게 할 때, 우리 내면에 숨겨진 온돌의 따뜻함을 찾아내보자. 그 가장 낮은 수평의 위로가 모든 불안을 녹여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조용하고 단단한 뿌리가 될 것이다.








요즘처럼 공기가 차가워지면 하루가 괜히 무겁고, 작은 일에도 마음 안쪽이 서늘해지곤 하지요.

그럴 때면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온기가 생각나곤 합니다. 아래에서 은근하게 올라오는 열은 과장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마음을 오래 데우는 힘이 있지요.

뜨끈한 바닥에 몸을 살짝 내려놓으면, 긴장으로 굳어 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립니다. 온기가 천천히 올라오면, 조용히 숨을 골라낼 여유가 생기고, 하루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집니다.

겨울에 가까워질수록 낮은 자리에서 따뜻함을 찾는 일은 더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우리 몸이 먼저 알고, 마음이 뒤따라 회복되기 시작하니까요.

그 묵직한 온기가 마음 깊은 곳까지 번져 글벗님들의 하루에도 은은한 따스함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온돌의위로 #수평의평화 #바닥의철학 #내면의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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