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완벽하게 괜찮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지고 있는 중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오늘도 용기를 낸다.
어느 날은 감정의 바닥을 기며 하루를 버티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놀랄 만큼 괜찮아지는 날도 있다.
이 기복 심한 병은 나를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오가게 하며, 하루하루를 긴장감 속에 살아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약을 복용한 이후 그 증폭의 범위가 확연히 줄어든 느낌이었다.
마치 마음속에서 매일 요동치던 큰 파도가 점차 잔잔한 물결로 바뀌어가는 기분이었다.
그 변화는 단지 감정의 평온함뿐 아니라, 삶의 균형을 다시 회복해 간다는 작은 신호처럼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도 변화를 알아봤다.
“요즘 컨디션 좋아 보인다.” “예전보다 표정이 훨씬 밝아졌어.”
그 말들은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고, 스스로도 바라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말들을 들을 때면 마음 한편이 간질거리고, 때로는 불안해지기도 했다.
이 평온함이 정말 ‘내 것’일까? 아니면 약이 만들어낸 착각일까?
맑은 정신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누군가와 웃고, 이야기 나누는 일상이 다시 찾아왔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런 일상이 돌아올수록 마음속 또 다른 걱정이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 이 안정감은 나의 것이 아니라 약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약을 끊는 순간, 나는 다시 무너져버리는 건 아닐까?’
물론 약물치료도 나를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생각이 불쑥 올라올 때면, 내가 진짜 나 스스로를 회복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단지 약에 기대어 일시적인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약에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먹고 있는 약이 잘 맞는다는 건, 내 마음이 잘 조율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어느 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내뱉은 질문에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답해주셨다.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회복의 길이 그저 '의존'이 아니라 ‘조율’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조금 놓이게 만들었다.
가끔은 지인들이 묻는다.
“이제 약 끊어도 되는 거 아니야? 괜찮아진 것 같은데.”
그 물음 앞에 나는 잠시 얼어붙는다.
마치 안 괜찮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마음의 짐덩이를 스스로 내려놓지 못한 기분이 든다.
아직도 사소한 일에 불안해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는 날이 종종 찾아올 때면 사람들은 다시 나를 ‘약한 사람’이라고 볼까 봐 그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마음의 목소리를 인정하려고 한다.
불안을 느끼는 나도, 여전히 회복 중인 나라는 사실을.
약을 먹는다고 해서 내가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약을 아직 끊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나아가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괜찮아도 괜찮아.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려고 한다.
회복에는 분명 속도가 있고 그 속도는 누구도 대신 정할 수 없다.
누구는 조금 더 빠르게 걷고, 나는 조금 더 느리게 걸을 뿐이란 걸.
느리다고 해서 덜 나아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군가 괜찮냐고 묻는다면 조금 느리지만 천천히 괜찮아지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빠르지 않게 너무 서두르지 않게 아직은 조심스럽게 괜찮아지고 싶다.
오늘도 약을 삼키며 생각한다.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스스로의 속도로 가보자고, 또 용기를 내보자고.
언젠가 진짜로 괜찮아지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약이 아닌 내 의지로 온전히 설 수 있는 날일지도 모른다.
비록 안 괜찮은 게 두려운 날에도 조금 더 평온하고, 조금 더 따뜻한 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용기 내어 하루를 살아간다.
괜찮아지는 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일이 아니라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또 한 번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