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하염없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하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몇 번의 웃음과 눈물을 지나왔지만 마음 한편의 회색 구름은 여전히 흩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나는 우울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 감정이 나를 완전히 잠식하는 거대한 어둠이었다면 지금은 그 어둠 안에서도 내 마음의 모양을 살펴보려 무던한 척 노력한다.
우울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다.
시끄럽게 울리는 생각들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그 복잡함 속에서도 나는 나름의 숨구멍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쓰기’다.
한참 끝이 안 보이는 우울한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마다 감정이 나는 폰을 들고 메모 어플을 눌렀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썼다.
문장이 제대로 말이 되지 않아도 철자가 틀려도 상관없었다.
그때의 나는 내 감정을 쏟아붓고 싶은 곳이 필요했을 뿐이니까.
소위 '~~를 글로 배웠어요'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궁금할 때, 힘들 때, 모든 감정 해소를 책 읽기를 통해 해 왔다.
이론 적인 말이 나의 감정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을지언정 책은 언제나 나에게 위로의 언어를 건넸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쓰기’에 대해 허들 없이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읽는 일은 타인의 마음을 빌려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라면 쓰는 일은 내 마음을 빌려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혹시 나는 우울을 없애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우울을 기록함으로써 길들여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이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의 메모기록을 열어봤다.
‘내 마음은 늘 회색으로 뒤덮여 있다.’
‘벗어나지 못하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기분.’
‘타인의 행복은 망가져 있는 내 일상을 더욱 자책하게 만든다.’
문장들은 날카롭고 거칠고 절망적이었다.
지금 다시 읽으면 얼굴이 붉어질 만큼 솔직하고 동시에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한 문장들이 그때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증명해 주는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그 글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세상이 잠시 내편인 듯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감정을 문장 속에 숨기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가벼워지도 하면서.
나에게 쓰는 일은 고백이자 치유였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며 나는 점점 내 마음의 결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울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낯설지는 않았으니까.
우울을 이겨낸다는 것은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글을 쓰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우울은 내 옆자리에 앉아 조용히 말을 걸지만 나는 이제 도망치지 않고 그 감정의 온도를 느끼고 쓴다.
“오늘도 괜찮지는 않지만 그래도 잘 버텼다.”
지금도 나는 회색빛에 살고 있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도 초록빛을 찾으려 애쓴다.
그 빛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책 한 권, 마음을 기록하는 한 문장, 내 글을 읽은 누군가의 공감까지...
그 사소한 것들이 나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냈다.
우울은 여전히 내 일부다.
그러나 이제 그건 나를 망가뜨리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우울하지만 그 우울을 읽고 쓰며 살아간다.
그것이 내가 이 감정을 견디는 유일한 방식이자 나를 지켜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건 결국 자신 안의 어둠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조용히 빛을 찾아 나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김없이 꾸준히 읽고 쓸 것이다.
"내 안의 우울을, 그리고 그 우울을 견뎌내는 나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