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쌓인 선풍기를 정리하고 미뤄뒀던 대청소도 했다.
이제 슬슬 누구보다 빠르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볼까?
이렇게 또 한 계절을 버텨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미처 닦지 못한 먼지를 털어내니, 계절이 확실히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창문을 여니 서늘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며 순간 머릿속이 환기됨을 느꼈다.
나는 괜히 서둘러 크리스마스 장식 상자를 꺼내고 먼지 쌓인 오르골을 꺼내 전원을 꽂았다.
아직 한참 남은 겨울을 미리 맞이하듯 반짝이는 전구를 달며 생각했다.
이제 슬슬 누구보다 빠르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볼까.
이렇게 또 한 계절을 버텨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조금 느리게 움직인다.
하루를 시작하는 데 오래 걸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로 해가 지는 날이 많다.
우울은 대체로 그렇게, 특별한 예고 없이 스며들어 나를 잠식하려고 하지만 나는 완전히 가라앉고 싶지 않다.
어딘가에 마음을 걸어둘 이유를 찾으려고 무던히 애쓴다.
집 근처 카페에 새로운 메뉴를 먹어보러 힘을 내어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싶어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이른 캐럴을 듣는다.
오늘도 내내 누워있다가 우울과 함께 산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보상은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라떼.
이어폰을 꽂고 평소에 취향인 가수의 노래를 재생하며 카페로 향한다.
우울애게서 도망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으며 받아들인다.
걷다 보면 쓸모없는 생각들이 흩어진다.
“왜 이렇게 게으를까”, “왜 나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무를까.”
이렇게 조각처럼 모인 자책이 바람에 실려 조금씩 사라진다. 아니,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잠시 묵혀둘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작년 이맘때쯤에 나는 어땠지?'
계절은 매번 같은 순서로 돌아오지만 나의 마음은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서겠지?
오늘도 우울과 함께 견뎌냈다.
뿌듯한 마음으로 손에 바닐라라떼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정리한 방에는 조용한 캐럴을 내뱉으며 돌아가는 오르골의 빛이 일렁거렸다.
나는 소파에 앉아 조용히 빛을 바라보았다.
오늘 특별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사부작 거리며 집 정리를 했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걸었다.
하지만 마음이 아주 조금은 견딜만해졌다.
우울증이란 친구와 함께 오늘도 견뎌낸 것이다.
우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곁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 뿐이다.
버텨내는 이 순간을 위해 나는 다시 한번 우울과 손을 잡는다.
내일도 버텨야 할 이유를 찾아야겠지만 그 이유가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음에 마음은 조금 덜 불안하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우울과 함께 산책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주 작은 희망 하나를 붙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