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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Apr 11. 2022

딸 혼사를 마치고

 “그래, 이 또한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 서운해할 것도, 마음에 담아 둘 것도 없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 여럿 있지만, 그중 자신에게 이익이나 도움이 될지 말지 만큼 중요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 바라서 서운해하지 말자고 몇 번씩 다짐을 해봤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딸의 혼사를 치른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찜찜한 기분이 말끔하지 않은 걸 보면 내 소견이 밴댕이 속보다 넓거나 좁쌀보다 크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딸의 결혼식은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상황인데도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셔서 성황리에 치를 수 있었다. 때가 때였던 만큼 찾아주고 격려해주신 분들을 떠올리면 내가 그동안 주변 분들에게 해온 것에 비해 과한 은혜를 입은 것만 같아 감사하면서도 송구함이 크다.  

    

특히나 작년 10월 말 국장직에서 물러나 퇴직을 기다리는 ‘끈 떨어진 갓’ 처지가 되어 치른 혼사였던지라 식장까지 와서 축하해준 많은 동료 선후배에게 느낀 고마움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30년 회사 생활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허투루 살지 않았음을 인정받은 것 같아 가슴이 벅차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냥 감사하고 감동하며 넘어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생각지도 않았던 한 가지가 뒷맛을 씁쓸하게 하였다. 식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몇몇 분들에게 감사 연락을 드리고 축의금 명단을 정리하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다, 분명 결혼식장에 오지는 못하더라도 성의표시는 했을 텐데......” 명단 정리를 마무리할 때까지도 응당 보여야 할 몇몇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응당’이라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지만, 그래도 애경사에 성의표시 정도는 하고 지낼만한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보이 지를 않으니 자꾸만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부조 안 한 걸 가지고 무얼 그렇게 마음을 쓰느냐고 힐난한다면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사람 그림자조차 보기 어렵다’는 옛말이 내 처지와 빗대어져 자꾸만 곱씹어졌다. 축의금을 받고 못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끈이 떨어지자마자' 표변을 한 것만 같아서 생각이 많아졌다.


혹시 못 보고 지나쳤나 싶어서 명단을 다시 확인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거 참, 내가 그동안 사람을 잘못 보았나? 아니면 내게 서운한 게 많았나......” 몇몇은 내게 서운할 수도 있겠거니 생각되어 쉽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지만, 다른 몇몇에 대해서는 함께 해온 세월은 물론이거니와 그동안 쌓아 온 정리를 생각해도 영 수긍이 되질 않았다. '과연 내가 현직 국장이어도 이렇게 했을까......'     


직장생활 30년 동안 다행스럽게도 집안에 큰일이 없어 딸 혼사 전까지 한 번도 부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고, 슬플 때 위로를 전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자 인지상정이란 생각에 직원들 애경사는 웬만하면 빼놓지 않고 챙겨 왔다. 하면서도 내가 그만큼 했으니 돌려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큰 일을 치르면서 부조 봉투 하나가 단순한 돈 봉투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축의금을 내는 사람에게는 의례적인 성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받는 이에게는 그와 나를 연결해주는 가교이자 징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허례이고 허식일지라도 직접 찾아와 축하해주는 분들이 있어 축제가 빛이 날 수 있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다. 외로운 사람, 궁박한 처지의 사람은 보통보다 훨씬 서운함과 오해의 늪에 빠지기 쉽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나의 사람 보는 안목이 그다지 신통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도 절로 알게 되었다.    

   

딸 시집보내고 허전해진 마음에 좀스럽고 치사스러운 생각들이 쉬 가시지 않는 것을 보면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스럽지만, 그 또한 인지상정인 것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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