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고백, 당신의 딸로서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이다.
그땐 몰랐다.
낳아 길러보지 않으면 평생 이해 못 할 말이라는 걸.
어릴 땐 친구들이랑 노는 게 세상 제일 좋았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술 마시고 노래방 가며 자유를 만끽했다.
주말엔 노느라 바빴고, 평일엔 일하느라 힘들다며
술잔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이렇게 노는 게 좋은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게 늘 마음 한편에 자리한 생각이었다.
굳이 자녀 계획이 필요할까?
지금 이 자유로운 삶도 충분히 좋은데.
그래서 연애할 때도, 결혼을 준비할 때도,
그리고 결혼 후에도
나는 줄곧 딩크로 살겠다는 의견을 냈고,
그런 내 마음을 남편은 조용히 존중해 줬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이 살짝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두 딸의 엄마가 되어 있다.
처음엔 모든 게 신기하고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조금씩 말이 트이고,
자기주장이 생기면서
내게선 문득 거울처럼 비치는 ‘엄마의 모습’ 이 보이기 시작했다.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
이 말은 미움이 아니었다.
그저 속상해서,
그저 애달파서.
내 마음 같지 않은 자식에게
그저 조금만, 알아달라는 투정이었을 뿐.
그걸 한참을 돌아서 이제야 알게 됐다.
평생을 일하시느라 영화관 한 번 가지 못했던 아빠는
사실 OTT 프로그램에 안 본 영화가 없을 정도로 영화광이었고,
독박육아를 평생 감당해 온 엄마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못한 게 아니었다.
안 한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보다,
자식 키우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모두 미뤄둔 것이었다.
내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
숨 쉬고, 걷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바지를 스스로 내리고 변기 앞에 앉는 모습만 봐도
그 한 장면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
이제는 안다.
내 일상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자기 일생을 바쳤다는 것을.
인생을 사계절로 나눈다면, 중년은 아마 가을쯤일까.
엄마 아빠의 지금이 그쯤이라면,
나는 그 계절이 가장 따뜻하고 고운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소리치며
철부지처럼 구는 날이 많지만
이 자리를 빌려 이 마음만은 꼭 전하고 싶다.
엄마, 보고 있어?
사는 동안 평생 갚을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