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모르는 보테가 클럽
요즘, 자꾸 같은 장면을 보게 된다. 이상할 정도로.
회사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점심 자리에서도
누군가 계산을 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눈이 가는 지점이 있다.
그들의 지갑.
그리고 그 지갑은, 어김없이
보테가 베네타.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야, 너도 보테가 써?”
“왜 다들 보테가만 들고 다니는 거야?”
친구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나는 그냥, 예뻐서 샀는데?”
… 대답이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마치 감염이라도 된 사람처럼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스타벅스 계산대 앞에서
보테가 지갑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블랙 컬러.
특유의 큰 위빙 패턴.
손에 착 감기는 반지갑 또는 카드지갑.
이건 나만의 착각일까?
아니면 도쿄 전체가
같은 드레스 코드에 동의한 것일까?
며칠 뒤, 같이 점심을 먹던 동료에게 물었다.
“근데 그 지갑은 왜 산 거야?”
그녀는 말했다.
“일하다가 전화가 왔어요.
기다리던 사이즈가 입고됐다고요.
직원분이 그러더라고요.
‘지금 안 오시면 다른 분께 넘어가요~’라고…”
결국, 반차 내고 매장으로 달려갔단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나의 보테가 선생님…”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건 거의 콘서트 예매 아닌가?
이제 보테가 지갑은 단순한 ‘지갑’이 아니라
‘소속’의 티켓에 가까워졌다.
처음엔 유머인 줄 알았던
‘보테가 선생님’이라는 말.
그런데 요즘 어패럴 업계에서는
진짜로 그렇게 부른다.
정중하게. 경외하듯. 아주 진지하게.
"보테가 센세."
하…
이쯤 되면 정말 뭔가 있는 거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놓치는 걸까?
아니면 이 ‘빅 위빙’이라는 구조적 쾌감이
일본 여자들의 미감과 기묘하게 맞닿아 있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신주쿠 이세탄 보테가 행사장에서
일본 스타일리스트 도도 치하루상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제 주변에 돈 잘 버는 사람들은 다 보테가 쓰더라고요.”
아—
이건 패션의 징표가 아니라, 자산운용의 징표였어?
그리고 오늘도 나는
카페 계산대 앞에서
인트레치아토 지갑을 꺼내는
한 여자의 손을 유심히 바라본다.
나만 빼고, 서로만 알아보는
조용한 신분증 같은 것.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이 조용한 수수께끼 안에서—
나는 조용히 관찰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보테가의 매력은,
과시하지 않는 과시에 있다.
로고도 없고, 장식도 없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안다.
그 짜임, 그 광택, 그 조용한 고집.
나도 한때는
‘엄마들의 브랜드’라고 생각했다.
너무 클래식하고, 너무 정숙해서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런데 어느 날, 다니엘 리가 등장했다.
브랜드는 리브랜딩을 넘어서
거의 환골탈태했고
결국 나까지 유혹했다.
생일은 네 달이나 남았는데
나는 이미 생일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최종 후보는
포리지 컬러의 아르코백.
실용성과 고급미가
정교하게 균형을 이뤘다.
지갑은 나를 설득하진 못했지만,
가방은 날 설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주 만족스럽게
그 가방을 들고 다닌다.
사치스럽지만, 돈은 아깝지 않았다.
요란한 로고가 없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보는 사람은 안다.
그 짜임과 결,
그 무언의 권위감.
보테가 선생님은 말이 없다.
말 대신,
존재감이 모든 걸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