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허세도쿄 11화

조용한 사치를 담는 그릇.

센스는 그릇을 타고온다.

by Asparagus

그릇에 대하여

조용한 사치, 마음을 담는 도구



감자를 올리면, 접시가 요리가 된다.

유카 오와다의 접시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순간엔 말보다 침묵이 더 정확한 반응이니까.


그건 투명한 밤하늘 같았다.
아니, 투명한 밤하늘이 만든 접시 같았다고 해야 할까.


툭 던지듯 말아올린 곡선엔 무심함의 미학이 있었고
안쪽에는 이쑤시개로 살짝 누른 듯한 요철이
일정한 리듬으로 박혀 있었다.


그건 그녀만의 음악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다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리듬.


나는 그 접시에 감자를 올리는 걸 좋아한다.
삶은 감자, 구운 감자, 으깬 감자.
솔직히 뭐든 괜찮다.


감자가 말을 안 해도,
접시가 알아서 설득해준다.


그 접시는 감자를 ‘문학적 식재료’처럼 보이게 만든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어느 날은 감자가 카뮈처럼 보였고,
또 어떤 날은 스탕달 같았다.


접시가 요리보다 더 요리인 순간.
나는 그 마법을 믿는다.




국을 담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카자토 하나코의 그릇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다.


백자의 여백 위에 수묵 한 방울이 ‘툭’—
말끝을 흐리는 사람처럼,
그릇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여기 있지만, 주인공은 아니에요.”
그릇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존재하지만 튀지 않는 존재.
도쿄에선 그런 걸 ‘센스 있다’고 부른다.


나는 그 그릇에 자주 국을 담는다.
된장국, 다시마국, 멸치국물.


바쁘고 약간 기분이 가라앉은 날엔
그 국그릇에 국을 따라,
천천히 마신다.


그러면 국물의 따뜻함에 맞춰
내 기분도 가라앉는다.
정확히, 국물의 온도만큼.


그건 잠수와도 비슷하다.
천천히 수면 아래로 내려가,
조용한 생각들을 하나하나 만지는 일.




그릇 하나에 뭐 그렇게까지?

충분히 그렇게까지 할 수 있다.
잘 만든 그릇은 사람을 조용하게 만든다.


그건 반쯤은 예술이고,
반쯤은 철학이다.


왜 박물관엔 옛 옷보다
백자가 더 오래 남아 있을까?
아름다움엔 ‘쓸 수 있음’이라는 조건이 붙을 때
더 오래 견디기 때문이다.


혼자 살 땐,
무인양품 세트 하나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기 시작하면서
내 식탁에 올라올 그릇을 고민하게 됐다.


그 순간부터
내 안의 ‘그릇 덕후’가 조용히 눈을 떴고,
그 눈은 아직도 감기지 않았다.




그릇은 충동적으로 살 수 없다.


“이거,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런 말 한마디에 선물받은 그릇은
사실, 감동의 결정체다.


그릇을 고르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대의 식성, 색감 취향, 아침 식사 루틴까지.
거의 연애에 가깝다.


그릇은 사랑의 기술이다.
그리고 때로는,
센 척의 도구이기도 하다.


“이거 유카 오와다 거야. 일본에서도 오프라인 한정.”
“유약 바르기 전에 구운 거라 텍스처가 살아 있어.”
“너 파스타 좋아하잖아? 이 접시에 담으면 진짜 예뻐.”


그릇을 건넬 땐
이런 말을 살짝,
마치 별것 아닌 듯 얹어두면 된다.


마법의 주문은
늘 작게 속삭이는 게 효과가 좋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
“넌 왜 그렇게 그릇을 좋아해?”


나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그릇은 날 실망시키지 않거든.”


아이가 밥을 안 먹는 날에도,
남편이 또 양말을 뒤집어 빨래통에 넣는 날에도,
택배가 지연되는 날에도—


그릇은 그 자리에 있다.
조용히, 묵묵히, 나를 기다린다.

그건, 애인보다 더 낫다.


나는 오늘도 국을 끓이고,
그 국을 담을 사치를 꺼낸다.


조용한 사치.
아무 말 없이 나를 감싸는, 오래된 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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