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척, 완벽하게
아오야마의 브런치 테이블.
주말의 요요기우에하라.
그리고 하라주쿠 골목처럼 세련된 여자들이 모이는 동네에서,
나는 한 가지 공통된 풍경을 자주 본다.
머리카락이 촘촘히 기름을 머금고 있다는 것.
적당히 바르면 샤워 직후의 잔열이 남아 있는 듯하고,
조금 더 듬뿍 바르면 ‘감고 안 말린 머리’처럼 보인다.
일본어로는 ‘웨또 헤어’, 젖은 머리다.
한국에서는 가끔
“머리 안 감은 거 아니야?”라는 질문이 날아오지만,
도쿄에서는 그게 곧 세련됨의 공식이다.
나도 그 ‘공식’에 진입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
그전까지 나는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찰랑찰랑 모발’ 파였다.
지금은 주말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웨또 헤어로 산다.
주말엔 좀 봐줘야 한다. 인간이니까.
왜 ‘웨또 헤어’인가.
처음엔 그게 궁금했다.
왜 도쿄 여자들은 다들 살짝 젖어 있을까?
그리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이만큼 빠르고, 이만큼 그럴듯하게 완성되는 스타일링은 없다.
손바닥에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려 머릿결을 따라 쓸어내리면,
단 30초 만에 ‘나는 감각적인 사람입니다’라는 사인을 발신할 수 있다.
깔끔하게 윤이 도는 머리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취향이 분명하고,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며,
자신의 시간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그 매끈한 표면 뒤에 있는 생활감까지 세련되게 포장해주는 것,
그게 바로 웨또 헤어의 힘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이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헤어오일 수집가가 되었다.
클렌징 오일도, 립밤도 하나면 충분한데
헤어오일만은 줄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도쿄 여자들은
같은 브랜드의 네일오일을 쓰면서도
헤어오일만큼은 각자의 개성이 분명했다.
이유도 이제 안다.
겨울엔 스웨터 위로 촉촉한 머리카락이 주는 대비가 예쁘니까
리치한 질감의 오일이 필요하다.
비 오는 날엔
잔머리를 단단히 제압할 유화 베이스.
여름엔 상쾌하고 가벼운 텍스처.
젖은 듯, 안 젖은 듯, 온기만 남기는 정도.
머리가 지쳤을 땐
오가닉 베이스로 달래준다.
욕실 한쪽에는
계절별, 기분별, 용도별 오일이 줄지어 서 있다.
남편이 묻는다.
“이 기름들은 왜 이렇게 많아?”
나는 간단히 대답한다.
“다 용도가 달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게 좋다.
만약 도쿄에서 세련된 여자처럼 보이고 싶다면,
비싼 디자이너 옷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드럭스토어나 코스메숍에서 헤어오일 한 병을 사라.
머리끝에 듬뿍 바르고,
무심한 척 오모테산도를 걸어라.
그러면 이미 절반은 성공이다.
그리고 묶음머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것에도 계파가 있다.
첫 번째는 5:5 가르마.
잔머리 하나 없이 단단히 눌러 묶은 낮은 포니테일.
눈에 띄지 않게 감춘 고무줄.
그건 거의 건축물이다.
이 머리를 한 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상상한다.
어패럴 회사에서 일할 것 같다.
커피는 무조건 콜드브루.
집에는 하라주쿠에서 산 독립출판물이
쌓여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내 나름의 도시 감상법이다.
두 번째는 ‘묶은 채로 잠들었다가 그냥 출근했네?’ 싶은 머리.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수리 볼륨이 절묘하다.
흘러내린 옆머리의 각도도 정확하다.
절대 귀찮아서 묶은 게 아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무심함이다.
이 머리로 테라스 카페에 앉아,
선글라스를 쓰고,
영자신문을 넘기면—
100% 빠리지앵 완성이다.
도쿄 여자들은 무심함의 완성도를 안다.
정갈하게 나뉜 5:5 가르마,
흘러내릴 듯 말 듯 고정된 옆머리,
그리고 무심한 듯 단단하게 묶인 포니테일.
그 이미지는 한 번 각인되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도, 도쿄의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올 것만 같은—
그런 잔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