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경에 진심인 도시에서 살아남기
선글라스는 누구나 한두 개쯤 있다.
여행지에서 충동적으로 산 거,
공항 면세점에서 급하게 고른 거.
그런데 ‘자기 안경’이 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시력 보정용 말고,
진짜 자기 얼굴에,
자기 취향에,
자기 세계관에 어울리는 안경.
그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도쿄 어패럴계는 다르다.
여긴 좀… 이상할 정도로 안경에 진심이다.
안경 하나쯤은 기본이고,
자기만의 아이웨어 컬렉션을 가진 사람도 많다.
진짜로. 놀랄 만큼 많다.
게다가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그냥 ‘쓴다’가 아니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치밀하게 쓴다.
브랜드도 아주다양하다.
어떤 이는 톰브라운를
어떤 이는 까르띠에를
또 어떤 이는 린다패로우의 거울 같은 렌즈를 쓴다.
그런데 그 모든 안경이,
의외로… 너무 잘 어울린다.
지나칠 수 없다.
멈춰 선다.
다시 본다.
도대체 왜, 저 안경은 그녀의 얼굴과 그렇게 잘 어울리는 걸까?
그건 거의 인연처럼 보였다.
사람이 안경을 고른 게 아니라,
안경이 사람을 먼저 알아본 것 같달까.
그리고 나는 그걸 꿈꿔왔다.
내 얼굴과 사적인 계약을 맺은,
나만의 아이웨어.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보테가 부터 톰브라운까지.
아야메 부터 금자안경까지
진심으로 말하건대,
안경 쇼핑은 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퀘스트다.
나처럼 살짝 긴 얼굴엔 이런 프레임이 어울린다길래
렌즈 없이 코에만 얹어봤는데…
이상하게,
안경을 쓰는 순간 내가 사라진다.
거울 속엔 내 얼굴이 아니라
안경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러니까…
안경이 나를 먹어치우는 느낌.
안경 쇼핑은,
이 세계에서 가장 고독하고 어려운 퀘스트다.
매일 수많은 옷을 고르며 살아가도,
정작 내 콧등 위에 안착할 그 한 쌍은 아직 못 찾았다.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
왜 그녀들은 다 안경이 잘 어울릴까?
도쿄 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안경 곡률에 맞춰 태어난 걸까?
유전자에 기본 핏감이 탑재된 걸까?
그래서 오늘도,
그 미지의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
안경점을 찾았다.
정중하게 말했다.
“저… 제 얼굴에 어울리는 안경이… 있을까요?”
직원은 나를 조용히 스캔하더니,
잠시 정적. 그리고
“음… 음……”
아. 이건
‘이 고객, 쉽지 않겠다’는 뜻이구나.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분명,
나에게도 어울리는 안경이 있을 것이다.
도쿄 여자들도 처음부터 찰떡은 아니었겠지.
그녀들도 분명 어딘가 안경점 구석에서
“으악, 이건 광대 너무 튀어나와 보여요!”
“이건 뿔테가 너무 무거워요!”
를 외쳤을 것이다.
그런 좌절과 실험의 밤을 수없이 지나
지금의 그 찰떡 안경을 손에 넣은 거겠지.
언젠가 나도,
지하철에서 무심히 안경을 고쳐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회의실에서 조용히 뿔테를 내리고,
카페 창가에서 책장을 넘기다
안경 너머로 누군가를 바라보는 사람.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나, 안경 잘 어울리죠?’
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하는 그런 사람.
도쿄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녀들은 모두,
자기만의 안경을 들고 다닌다.
그리고 나도 믿는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내 얼굴에
살짝 귀찮은 듯, 하지만 익숙한 듯,
자리를 잡고 앉아줄
그 한 쌍의 안경이 나타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