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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시험을 치루다

by 삐아노


어른인 나는 안다.


당시 엄마의 행동은 잘못된 것임을.

그 기저에는 자식을 꼭 대학에 보내야만 한다는 크나큰 불안이 깔려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엄마는 나 대신 음대입시카페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세상엔 공짜가 없듯이 인터넷 활동은 쓸만한 정보도 주지만 불안도 함께 제공한다.

그러니 자식의 입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을 터다.



이 사건 때문인지 무언지

고3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더 이상 집에서 연습하지 않고

밤에 집 앞 피아노 학원의 연습실을 빌려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숨통이 트였다!





당시 나만 이 연습실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였는데 독특하게도 고3 반 중에 '예체능반'이 있었다.

미술, 악기, 체육 하는 아이들이 이 반으로 들어왔고 다른 아이들이 공부에 올인하는 동안 우리는 공부 외 실기연습도 하고 자체 향상음악회 같은 것도 했더랬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애들은 7-8명 정도 되었었는데,

이 중에 한 명과 고3이 되어 뒤늦게 전공을 시작한 한 명, 총 셋이서 연습실을 함께 썼다.



우리가 고3이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예체능반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같은 전공끼리는 묘한 긴장감과 질투심, 부러움, 불안을 담은 공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는 그때 입시곡으로 베토벤 소나타 23번, 일명 '열정소나타' 3악장과 리스트 초절기교 에튀드 10번을 준비했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3악장
리스트 초절기교 에튀드 10번 마의 도입부

베토벤은 오른손 16분 음표를 매우 빠르고 고르게 연주하면서 왼손이 빨라지지 않고 칼 같은 타이밍에 정확히 들어오는 테크닉이 참 어려웠고 리스트는 도입부 화음들의 윗소리를 또랑 하게 내면서 부드러운 레가토로 여리게 연주하는 게 관건이었다.






보통 자유곡 입시로는 베토벤 소나타와 에튀드 특히 쇼팽 에튀드를 많이 선택한다. 와중에 어떤 친구는 베토벤 대신 쇼팽 소나타 2번 1악장을 쳤는데 그게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결국 나중에 지겹도록 쳤다!)


쇼팽 소나타 2번 1악장. 강렬하고 화려한 도입부



또 클래식이 아닌 재즈피아노를 전공하던 친구도 있었는데 정말 신들린 듯이 잘 쳤던 기억이다.



당시 학교의 커다란 홀에 딸려있던 피아노 연습실을 쓰는 것도 뭔가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바이올린 전공하는 친구와 멘델스존 콘체르토를 재미 삼아 같이 연습해 보면서 반주란 것도 처음 경험해 봤다.

또 베이스 기타를 전공하던 친구와 늦게까지 남아 뮤비 찍는 놀이를 하던 것, 학교를 마친 뒤 학원 연습실에서 같이 연습하는 친구들과 치킨도 먹고 밤에 편의점도 가고 놀이터도 가고 한 것이 모두 한 편의 추억이 되었다.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하진 않았다.

셀프 자극을 준답시고 악보에 '예고생 애들이 초등학교 때 치던 거 나는 지금 치고 있다' 뭐 이런 깜찍한 문장들을 써붙였던 기억이 난다.



수능 치기 한 달 전쯤부터는 공부를 위해

피아노 치는 시간을 확 줄였는데 너무 행복했다.

세상에 수능 공부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성적도 고1, 2 때보다 많이 올랐고

고 3 때는 반에서 4등 했던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수능날.


음대는 수학을 안 봐도 되지만 나는 꾸역꾸역 풀었고-

성적은 꽤 괜찮게 받았다. 대부분의 음대에서 성적 때문에 떨어질 일은 없을 정도였다.



참, 수시도 몇 군데 썼었는데

당시 가장 높았던 경쟁률이 100:1이었다.

수시는 죄다 광탈이었다.



예체능의 억울함은

수능 본 하루 딱 놀고

다른 아이들 다 신나게 노는 동안

최후의 연습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수능날 친구와 명동 가서 논 것을 마지막으로

입시 막바지에 돌입했다.

엄마와 선생님이 정해주는 대로 가군, 나군, 다군을 썼고 전문대도 두 곳을 썼다.



음대 실기시험은 가장 추운 1월에 열린다.

가뜩이나 긴장되어 미치겠는데 영혼이 얼 정도로 춥기까지 하다니-

초록색 국민 핫팩을 흔들며 시험장 뒤에서 다른 수험생들이 치는 걸 듣고 있으면 얼어붙은 심장이 강제로 바깥에 꺼내어지는 기분이다.



특히 무대 뒤에서 들으면 벽 때문에 간접적으로 울림만 들려서 어찌나 잘 치게 느껴지는지!

다들 플레트네프, 쉬프, 지메르만 등 대가에 빙의한 것처럼 연주하는 것 같아서 자동적으로 위축된다.



이제 1월이 되고 본격적으로 시험을 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입시장에 들어가기 전 우황청심환을 물에 개어 먹이곤 했다. 참 쓰고 맛이 없었다.



가군 시험을 보기 직전 대기실에서

하늘이 도운 건지 '열정 소나타 이 부분에서 크레셴도 해야지!' 하는 아주 좋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자신감이 훅 생겼다.



문제는 나군이었다.

나도 모르게 중간에 살짝 멈췄다가 다시 이어서 쳤다.

음대에서 멈추는 건 크나큰 결격 사유라고 생각했기에

입시장에서 나와 이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화가 잔뜩 난 채로 저만치 먼저 앞서 걸어갔다.

나는 집에 가는 내내 풀이 죽은 채로 뒤따라 갔다.

그때의 참담한 심정은 지금도 또렷하다.



다군 시험과 전문대 두 곳 시험을 어찌어찌 전부 마쳤다.




결과는??





예비번호를 받은 학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다섯 군데 모두 합격이었다!

가장 가고 싶었던 가군 학교로 정했다.




나는 아빠한테 축하금으로 100만 원을 받아서

대학 입학하기 전 한 달 동안 친구랑 원 없이 놀았다.




놀지 말고 실기를 준비했어야 하는 걸 전혀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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