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려나간 예산

간절함이 전해 지지 않았다.

by 박계장

3년 만에 시청으로 돌아왔을 때, 예산부서에는 낯선 얼굴이 보였다. 사회복지 분야 출신 직원이었다. 예전에는 볼 수 없던 배치였다. 잠시 의아했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시의 사회복지예산은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고령화와 돌봄, 저출생, 정신건강, 주거지원까지 삶의 안전망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영역이 사회복지라는 이름 아래 묶이고 있었다. 예산 규모는 커졌고, 사업 구조는 복잡해졌으며, 정책 판단은 더욱 미묘해졌다.


그는 공직 경험이 길지 않은 편이었지만, 사회복지 분야 실무를 거쳐 예산 업무를 맡게 되었다. 현장의 감각을 가진 사람이 예산을 다루면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사업을 걸러내고 꼭 필요한 예산은 지켜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보건과 복지의 언어를 아는 이라면 행정의 효율과 현장의 정서를 아울러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실제 편성 과정은 기대와 달랐다. 그는 원칙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세부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국비와 지방비가 함께 투입되는 사업이 늘어나는 만큼 자체 사업을 줄여야 한다는 기준도 강조했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한 접근이었다. 하지만 그 명확한 기준이 지역의 특수성과 현장의 절실함, 사업의 연속성과 시민과의 신뢰 같은 요소들을 놓치게 했다.


물론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재원 안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것은 예산 담당자의 책무다.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형평성 논란이 생기고, 설득력 없는 편성안은 결국 반려되기 마련이다. 그는 맡은 자리에서 정직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숫자로 전체를 조망해야 하고, 그 안에서 질서를 세우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얼마 전 같은 학교에 다니던 학생 세 명이 함께 생을 마감한 사건이 있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이었다. 언론은 연이어 보도했고, 그중 하나는 자살예방센터 예산이 전년도 대비 크게 삭감되었다는 기사였다. 올해 초 정신건강 업무를 맡게 된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접했다.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복원하려 했으나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


예산 삭감 사유를 묻는 언론의 질문에, 나는 사업 부서의 입장을 설명했다.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 추진과 국가 지정사업 확대를 위해 시비 예산이 최소한 전년도 수준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산 담당 부서의 입장은 달랐다. 국비 매칭 사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체 사업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이 내용은 그대로 기사화되었고, 시의회는 곧 관련 질의를 예고했다. 언론 보도에 특정 부서의 결정이 직접 언급되자 내부에서는 곤란해하는 기색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을 그대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나로서는 달리 선택할 수 없었다.


부산은 자살률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 특별·광역시 중에서도 늘 상위권에 머물러 왔다. 그런 도시에서 자살예방사업의 예산이 줄었다는 사실은 시민들에게 곧 시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로 읽힌다. 정책 의지는 숫자만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시민들이 받아들이는 가장 직접적인 지표가 바로 그 숫자다.


예산을 다루는 사람의 전문성과 태도는 중요하다. 한정된 예산에서 무엇을 줄이고 늘릴지 결정하는 일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특히 복지와 건강, 생명과 직결된 영역에서는 더욱 섬세한 판단이 요구된다.

전문직의 배치는 그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현장을 아는 시선으로 제도를 바라보고, 부서 간의 언어를 통역하며, 때로는 현장의 절실함을 대변하는 것. 전문성은 날카로움이 아니라 섬세함을 의미한다. 숫자 뒤에 숨은 얼굴들을 읽어내고,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이다.


아직은 경험이 짧아서일 것이다. 예산의 무게와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언젠가 그는 현실의 결을 더 세밀히 보게 될 것이다. 숫자 뒤의 얼굴들을, 증액과 삭감이 만들어내는 파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의 전문성은 냉정한 심판자가 아니라 합리적인 조율자로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예산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그 물음 앞에서 공직자는 늘 답을 찾아야 한다. 나 역시 그 물음에서 자유롭지 않다. 언젠가는 그도 그 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찾게 될 것이다.

keyword
이전 09화수요일의 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