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나들이

by 박계장

일흔이 훌쩍 넘은 어머니는 여동생 내외보다 먼저 가게에 도착해서 그날 나갈 반찬을 하나하나 손질하신다. 무를 썰어 나박김치를 담그고, 오징어와 어묵을 데쳐 매콤한 양념에 무치신다. 충무김밥에 곁들일 이 반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면, 다시마와 멸치, 양파를 넣고 육수 국물을 끓이신다. 그날 손님상에 올라갈 겉절이도 어머니의 몫이다. 칼국수 반죽은 기계가 하지만, 그 외의 거의 모든 준비는 어머니 손에서 시작된다. 수요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같은 손짓이 반복된다. 그 손짓 안에 어머니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가난한 집안의 맏딸이었던 어머니는 어른이 되어야 했다.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고,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놀 수 없었다. 어린 손으로 빨래를 하고,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또래 아이들이 공부를 할 때, 어머니는 공장일을 했다. 그런 어머니가 스물도 되기 전에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가난해도 성실한 사람이길 바랐겠지만, 아버지는 경제관념이 없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결혼 후에도 계속 일해야 했다. 나를 낳고, 둘째를 낳고, 셋째와 넷째까지 낳아 기르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없었다.


IMF가 터졌을 때 우리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작은 슈퍼마켓이 문을 닫았다. 내가 공직에 입문하고 몇 년간 번 얼마 되지 않은 봉급도 장사 밑천으로 들어갔지만 모두 사라졌다. 어머니는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 손주들을 돌보면서도 일손을 놓지 않으셨다.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사출 제품을 받아와 송곳처럼 생긴 도구로 불필요한 고무 잔여물을 일일이 떼어내는 작업을 하셨는데, 한 개당 몇 원에서 몇십 원을 받는 단순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에게도 개인적인 꿈이나 바람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하고 싶었던 일, 가보고 싶었던 곳, 입어보고 싶었던 옷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은 언제나 가족의 필요 뒤로 밀려났다. 어머니만의 시간, 어머니만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평생을 보내신 어머니는 지금도 변함없이 가족을 위해 손을 움직이고 계신다.


현재 어머니가 일하시는 칼국수집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매제는 여동생과 함께 김해의 한 시장에서 떡방앗간을 운영했었다. 쌀자루를 나르고, 트레이에 담긴 곡물가루를 찜기에 넣고 꺼내는 작업이 하루 종일 이어지는 고된 육체노동이었다. 결국 매제의 허릿병 때문에 방앗간은 문을 닫게 되었다. 그즈음 어머니와 함께 구포역 근처에서 칼국수집을 하던 이모의 건강이 나빠져 가게를 접게 되었고, 여동생 부부가 그 가게를 이어받았다. 어머니도 자연스럽게 다시 주방에 서게 되었고, 이후 식당은 김해로 자리를 옮겨 현재에 이르렀다.


어머니가 쉬는 수요일에 맞춰 두어 달에 한 번 김해를 찾는다. 지난 수요일도 오랜만에 함께 바람을 쐬기로 했다. 처음에는 거제 외도를 목적지로 삼았지만,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 때문에 가까운 양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와 평산책방을 둘러보기로 하고, 먼저 김해 삼정동의 백반집 '더부엌'에서 점심을 먹었다. 13,500원에 한 상 가득 차려주는 이곳은 국과 된장찌개, 묵은지찜, 생선구이, 나물무침, 잡채 등 스무 가지가 넘는 정갈한 반찬으로 유명하다.


점심을 마치고 동김해IC를 거쳐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에 올랐다. 중앙고속도로지선을 따라 양산 방면으로 향하는 길은 비교적 한산했다. 통도사IC에서 빠져나와 지방도로로 접어든 뒤, 통도사를 스치듯 지나 산길로 들어섰다. 길가에는 새로 지은 전원주택과 오래된 시골집이 드문드문 이어졌고,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몇 분쯤 달리자 ‘평산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 입구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방하는 현수막과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문구가 벽면에 함께 붙어 있었고, 성조기와 태극기가 여러 개 나부끼고 있었다. 길가에서는 보수 유튜버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핸드폰을 든 채 실시간 방송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생김새가 제각각이듯 생각도 참 다양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평산마을회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농산물을 팔고 있던 주민에게 평산책방 가는 길을 물었다. 그는 머뭇거리며 "저 길로 한 4분쯤 올라가서 구경하고 내려오세요"라고 짧게 말했다. 걷는 것이 불편한 부모님을 모시고 제법 경사진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왼편은 산이었고, 오른쪽은 농지와 멀리 잘 지어진 전원주택이 이어졌다. 이내 대통령 사저로 보이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나타났지만, 우리가 찾던 책방은 보이지 않았다.


더 올라가니 마을 안쪽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경찰 초소가 있었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초소를 지키는 경찰에게는 말을 붙이지 못한 채 계속 길을 걸었다. 뒤처지는 아버지를 재촉하며 오른편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카페가 하나 나타났다. 초여름의 더위에 이삼십 분을 걸은 탓인지 누구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카페 주인에게 평산책방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주인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책방은 마을 안에 있어요. 많이 지나쳐 오셨네요." 우리는 이미 마을 끝까지 와 있었다. 카페 주인이 내미는 지도를 보니 책방은 우리가 출발했던 마을회관 근처에 있었다. 처음 만난 주민은 대통령 사저를 구경하고 내려와서 책방에 들러라는 뜻이었겠지만, 우리는 그 말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셈이다.


결국 평산책방에는 가지 못했다. 부모님이 너무 지치셨기 때문이었다. 계획했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실패한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또 다른 수요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낡은 텔레비전을 함께 보다가 좋은 걸로 하나 사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말을 꺼냈다. 어머니는 늘 그러시듯 "고장도 안 났는데 뭐하러 바꾸노. 하지마라"라고 하셨다. 아들이 돈 쓰는 게 미안하셨을 것이다. 재작년에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수없이 해외여행을 다녔지만 부모님은 여권도 없으셨다. 그 여행은 내게 오래도록 짐처럼 남아있던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어낸 시간이었다.


텔레비전을 주문한 다음 날, 새 텔레비전이 도착했다. "왜 바꾸자 했는지 알겠다" 하시며 웃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 웃음소리에는 오랜만에 누리는 작은 사치에 대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


나는 다음 어느 수요일에도 어머니를 찾아갈 것이다. 이번에는 더 치밀한 계획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지도 모른다. 길을 잃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에서 마주치는 우연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걷고 싶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걸어가느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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