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글쓰기 예찬
혼자 있는 것이 좋다. 북적이는 장소는 불편하고, 활동적인 취미는 애초에 체질에 맞지 않았다. 운동도 즐기지 않아서 온 나라가 열광하는 축구 경기도 그저 그렇다. 한때 탁구 레슨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내 흥미를 잃었고, 비싼 돈을 주고 장만한 라켓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말수가 적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본 이라면, 나를 책을 곁에 두는 조용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나는 책보다 리모컨에 더 익숙한 사람이다. 집에 돌아오면 TV 앞에 앉는 일이 하루의 끝이고, 채널을 넘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편한 휴식이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유튜브와 온갖 영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두어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목적도 없고 계획도 없지만, 그런 무의미한 시간 속에서 마음이 가벼워질 때가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TV 앞에 앉는 일조차 시들해졌다. 예전엔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나 예능도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고, 새로 올라온 유튜브 목록도 더는 설레지 않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공허함은 점점 커졌다. 어느 저녁, 무심코 책을 손에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어색하지 않은 무언가를 찾다가, 낡은 표지 하나를 펼쳤을 뿐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도 한때는 책을 즐기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북구청 환경위생과에 근무하던 시절, 같은 청사의 세무과에 있던 후배 한 명과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말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내 기숙사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기숙사 6층에서 생활했다. 아침이면 약 1,500명의 학생들이 정해진 시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해서, 기숙사 각 층에서 내려온 줄이 복도와 계단을 따라 1층 식당까지 길게 이어졌다. 후배 말로는 그 시간에도 나는 책을 손에 들고 계단을 내려오더라고 했다. 수업이 있는 3학년 교실 건물까지도 15분은 족히 걸렸는데, 그때도 책을 들고 걸었다고 전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시절 나는 이어령 선생의 책에 빠져 있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 지향의 일본인' 이런 책을 열심히 보았던 것 같다. 학교 후문 근처에 있던 중고서점에서 그런 책을 샀다. 그런데 언제부터 책을 멀리했을까. 언제부터 리모컨이 더 친숙해졌을까. 그 변화의 순간이 궁금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변화라는 건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십을 넘기면서는 흔히 말하는 통잠을 잔 것이 몇 날인지 모르겠다. 잠들기도 어렵고, 겨우 잠이 들어도 자주 깬다. 이른 새벽에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면 하루 내내 피곤하다. 또래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은 되지만, 밤은 여전히 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국 잠마저 제대로 잘 수 없게 되는 일인가 보다.
한밤중에 눈이 떠질 때가 있다. 새벽 두 시, 혹은 세 시나 네 시. 일단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어둠 속에서 시곗바늘 소리만 또렷하게 들려오고, 자세를 바꿔도 편안한 자리를 찾을 수 없다.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으면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오늘 할 일, 지난주 실수, 몇 년 전 후회까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머리는 점점 또렷해지고,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럴 때면 책꽂이에서 먼지가 앉은 책 한 권을 꺼낸다. 종이에서 오래된 냄새가 풍겨온다. 재미없는 글을 읽다 보면 졸음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지만, 이내 글자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잡다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오래된 장면들, 어색했던 감정들, 끝나지 않은 걱정들이 마음속에서 맴돈다. 책을 읽기보다는 내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어진다.
결국 책을 덮고 컴퓨터를 켠다.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처음엔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손이 움직이는 대로 두드린다. 맞춤법도 문장 구성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차례로 적어 내려간다. 처음엔 더디던 타자 속도가 점차 익숙한 리듬을 타기 시작하고, 문장들이 차례로 쌓여가면서 새벽도 조금씩 물러난다.
10년쯤 전, 국민학교 시절 좋아했던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 기억을 라디오 시청자 사연 코너에 보낸 적이 있다. 며칠 뒤 방송에서 내 사연이 소개되었고, 내 이름도 함께 불렸다. 지금 생각하면 소소한 일이지만, 내 글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 일을 계기로 글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부산시 공무원 문인회에 가입해 동인지에 수필을 실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회상하며 쓴 시로 시화전에 참여한 적도 있지만, 그저 개인적인 추억을 다듬어보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그 뒤로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남은 채 일상에 밀려 손을 놓고 있었다. 새벽잠이 부쩍 줄어들면서, 글을 다시 써보기로 했다. 올해 4월부터는 예전에 써둔 글과 새로 쓴 글들을 '박계장'이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스토리에 올리고 있다. 평범한 공무원의 일상을 담기엔 더없이 자연스러운 이름이었다.
초반에는 묵혀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라 손끝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감이 고갈되었고, 그 무렵부터 다른 작가들의 글을 하나둘 읽기 시작했다. 잘 쓰는 이들의 글을 접하면서 깨달았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에 비해 내 글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고 주눅이 들기도 했다.
어떤 작가는 평범한 하루를 흥미롭게 써 내려가고, 또 다른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독자가 공감할 수 있게 풀어냈다.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있고, 단어 선택이 정확했다. 나는 그들의 글을 읽으며 부러워했다. 동시에 질문했다. 나에게도 그런 눈이 있을까. 평범한 하루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시선이 있을까.
한때는 특별한 사건이나 감정을 담아야 글이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누군가의 글에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은 대부분 사소한 일상에서 비롯된다. 따뜻한 말 한마디, 창밖으로 스친 계절의 빛, 오래된 책갈피에 낀 사진 한 장 같은 것들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의미는 언제나 삶의 한가운데 있었고, 다만 내가 그것을 놓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좋은 글이란 결국, 그 놓친 순간을 붙잡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무렵, 브런치스토리에서 '스토리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다른 작가들과 비교하며 내 글이 보잘것없다고 느끼던 차였기에 놀랐다. 그 작은 인정이 고마웠다. 『좋은생각』에 수필을 응모했을 때도 큰 기대는 없었다. 9월호에 내 글이 실린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 일이 멀어졌던 글과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스스로를 믿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요즘은 책임감 있게 글을 쓰기 위해 일주일에 한 편씩 연재하고 있다. 글감이 바닥이 나서 예전처럼 하루에 두세 편씩 쏟아내진 못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하루하루를 더 천천히 들여다보게 되어서 좋다. 출근하면서 마주치는 경비원의 인사, 동료들과 나누는 커피 한 잔, 옆자리 퇴직이 임박한 계장님과의 대화까지 모두가 글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다 보면 잊었던 일이 떠오르고, 흘려보냈던 마음을 다시 붙잡게 된다. 작은 장면 하나에서 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한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걷던 울진의 숲길, 아들이 서너 살이던 시절 함께 오른 산, 공직자로서 보람을 느꼈던 성취의 순간들까지 모든 것이 문장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요즘은 잠이 안 와도 그리 괴롭지 않다. 어차피 잠들지 못할 바에야 책상 앞에 앉아 글이라도 써보자 싶다. 새벽 세 시, 집안이 고요할 때 혼자 켜놓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평안이 찾아온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아무것도 재촉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나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을 문장으로 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