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이며 사는 인생
내년이면 우리는 결혼한 지 서른 해가 된다. 시간은 우리의 얼굴에 주름을 더했고, 머리카락에는 희끗한 빛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 기억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조약돌처럼 차갑고 단단한 감촉으로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서른 해라는 시간은 단순한 세월의 누적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작은 문명을 만들어냈다. 이 문명은 기쁨과 슬픔, 성취와 후회가 켜켜이 쌓인 감정의 지층이며,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의 총합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만나 다섯 달 만에 혼인을 했다. 그때 나는 스물여섯, 그녀는 스물일곱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특별한 운명의 인연이라 느낀 것도 아니었고, 만남에 있어 감정을 격하게 흔드는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내게는 가장 편안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그녀 곁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앞으로 함께할 시간들의 기대로 부풀었다. 성격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맞춰질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얼마나 낙관적인 기대였는지를 우리는 곧 깨닫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은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했고, 말로 풀기 어려운 감정들이 사이사이에서 부딪혔다. 결혼은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일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걸음을 끊임없이 조율하는 과정이었다. 그 조율은 때때로 피로했고, 어떤 날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체념이 서려있기도 했다.
우리는 둘 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다. 예물은 각자 준비했고, 예식은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작은 예식장의 낯선 조명 아래, 예식장에서 소개받은 전직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주례를 맡아주셨다. 우리는 그분에게 오만 원을 드리고, 예식 당일 처음 뵌 그분 앞에서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맹세했다. 그 순간의 약속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 진심만으로 결혼 생활을 지탱하기엔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그 시절의 결혼식은 대부분 일정한 형식 안에서 진행됐다. 정해진 절차와 순서에 따라 우리는 신랑과 신부가 되었고, 하객들은 박수를 보냈으며, 사진사는 그 장면을 필름에 담았다. 요즘 결혼식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이따금 멈칫하게 된다. 식전 영상, 신랑의 노래, 친구들의 퍼포먼스까지. 결혼식이 점점 공연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형식이 아무리 달라져도 결혼이라는 선택이 품고 있는 무게는 여전하다. 무대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 성공했더라도, 그 이후의 삶이 그 무대만큼 화려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해마다 19만여 쌍이 결혼을 하고, 9만여 쌍은 이혼을 선택한다는 통계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 숫자만으로 누군가의 고통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각자의 서사와 상처가 존재한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변해버린 서로의 모습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이며,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함께 살아가려 애쓴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서로를 붙잡았던 그 시절의 용기. 그 용기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오래전 부모님의 결혼 사진을 떠올린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부모님은 경상남도청이 주관한 합동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날 촬영된 사진 속에는 ‘경상남도 합동결혼식’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다소 긴장한 표정의 부모님이 나란히 서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놀랍도록 앳되었고, 아버지의 모습은 나의 젊은 시절과 닮아 있었다. 가난한 시절, 형식보다 함께 사는 일이 먼저였던 두 사람이 마침내 공식적인 부부가 되던 순간이 빛바랜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비록 완벽하진 않았지만, 끝까지 서로의 곁을 지킨 두 사람. 그 사진 속 부모님의 표정은 지금의 나에게, 결혼이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다시 묻게 한다.
결혼식의 형식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남는 것은 함께 살아낸 시간의 무게이며, 그 시간 속에서 선택하고 견디고 때론 후회했던 흔적들이다. 그 흔적은 때때로 말로 표현되지 않고,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그래도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더 깊이 이해하려고 애썼다. 결혼이란 결국,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살아가는 용기이기도 하다.
결혼을 앞둔 모든 사람들은 ‘이 사람과 평생 살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나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 결국 한쪽이 먼저 용기를 냈고, 다른 한쪽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그 질문의 진짜 의미가 ‘함께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함께 변화할 수 있을까’였다는 점이다. 사람은 멈춰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이기에, 결혼이란 본질적으로 서로의 변화를 함께 감당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날 예식장에서 서로의 손을 잡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녀의 손에서 전해지던 미세한 떨림과 내 손에 스며들던 온기가 지금도 느껴진다. 그 순간의 진심은 분명했지만, 그 진심이 시간이 흐르며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결혼이란, 하루로 끝나는 의식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선택하는 삶의 자세였다. 서른 해를 지나오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사랑은 결혼의 시작이지만, 지속은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다. 서른 해를 지나며 나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중과 인내임을 배웠다.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상처를 받으며 우리는 조금씩 무뎌졌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완벽한 부부란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서로의 결점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 부부만이 있을 뿐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도 변했다. 처음의 설렘은 익숙함으로, 열정은 습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이름이 이제는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울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여기까지 함께 걸어오게 한 것은 사실이다. 깊은 밤 홀로 깨어 있을 때면 나는 가끔 질문한다. 나는 이 시간을 충분히 살아냈는가. 그리고 지금 이 삶은,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가.
오래전에 한 작가가 지네와의 특별한 경험을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시골집에서 자던 중, 발가락을 물고 달아나는 지네를 붙잡은 그는 순간적인 아픔보다도 그 생물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과 불쾌감을 먼저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두꺼비를 키우던 여류 화가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그는 지네를 내던지는 대신 커피 병에 담아 며칠간 관찰했다. 풀잎과 지렁이, 작은 벌레를 넣어주며 지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 그 징그러웠던 생명체에게 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지네하고도 정이 드는데, 세상 무엇과 인들 정들이며 살지 못할까.”
그 문장을 읽고 나서 나는 우리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사랑은 시작이지만, 정은 함께 살아낸 날들 속에서 조금씩 깊어지는 감정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와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작가의 문장 속에서, 그리고 지금의 우리 사이에서 배웠다.
그렇게 돌아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 버릇, 심지어 결점까지도 익숙한 풍경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익숙함이 관계의 본질인지, 아니면 시간이 만든 착각인지 여전히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익숙함은 때로 위안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의 눈을 흐리게 하기도 한다.
결혼은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지금도 배우는 중인 어떤 상태다.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며, 어쩌면 마지막까지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 미완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서른 해의 결혼 생활이 남긴 가장 깊은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앞으로의 삶을 다시 배워야 할 이유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