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추어탕

잊히지 않는 소박한 맛

by 박계장

어린 시절, 우리는 대저동에서 큰고모네가 살던 용호동으로 이사를 했다. 1년 뒤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 부부, 작은고모 부부까지 차례로 옮겨왔다. 다섯 가구였지만 모두 같은 주인의 단칸방을 얻어 살았고, 큰고모네만 조금 떨어진 곳에 따로 자리를 잡았다. 잠은 각자의 방에서 잤지만, 식사는 한솥에 밥을 지어 함께 나눠 먹었다.


그 무렵 우리 밥상에는 고등어가 자주 올랐다. 식구가 많아 장에 나가 값이 맞는 생선을 보면, 어머니와 숙모는 괘짝째 사 들고 오곤 했다. 할아버지가 울진 후포 바닷가 출신이라 생선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특히 고등어는 값이 싸고 살이 많아 늘 든든했다.


손질한 고등어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살이 단단한 것들은 굵은소금을 뿌려 대나무 채반에 눕히고, 파리가 들지 않도록 망사 덮개를 씌운 채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며칠이 지나 꾸덕꾸덕해지면 한두 마리씩 꺼내 연탄불에 올렸다. 지글거리는 소리, 기름이 튀는 냄새, 골목까지 번진 향기. 사람들의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


자반으로 말리지 못한 고등어는 추어탕이 되기 위해 큰 솥에 올려졌다. 바닥에 물을 자작하게 붓고 둥근 찜판을 받친 뒤, 손질한 고등어를 겹겹이 올렸다. 솥뚜껑을 덮으면 가장자리로 김이 실처럼 흘러나왔다. 뚜껑을 열면 흰 김이 치솟고, 살점은 차츰 희게 굳어갔다. 젊은 삼촌은 막 쪄낸 고등어를 초장에 찍어 맛있게 드셨다. 어린 내 눈에는 쪄낸 생선을 초장에 찍어 먹는 모습이 낯설었다. 어머니는 고등어 살을 발라내어 큰 솥에 넣고 추어탕을 끓이셨다.


추어탕이라 하면 으레 미꾸라지를 떠올리지만, 부산과 경남 일대에서는 달랐다. 영양은 좋지만 값이 비싼 미꾸라지 대신, 값이 싸고 살이 많은 고등어가 주재료였다. 물에 얼갈이배추를 넣고 팔팔 끓이다가 발라낸 고등어 살을 고루 섞고,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국물은 맑으면서도 깊은 맛을 냈다. 밥상에는 잘게 썬 방아잎과 다진 마늘, 산초가루가 작은 종지에 담겨 함께 올랐다. 식구들은 각자 기호에 따라 국에 조금씩 섞어 먹었다. 고등어추어탕 한 그릇은 우리 집 밥상에서 가장 실속 있고도 따뜻한 음식이었다.


겨울이 오면 고등어추어탕은 더욱 자주 끓었다. 부엌 한쪽에는 연탄불 아궁이가 있었고, 그 옆에는 등유를 넣어 심지를 태우는 곤로가 놓여 있었다. 작은 냄비나 주전자를 올리기에는 편리했지만, 큰 솥을 오래 끓일 때는 연탄불이 제격이었다. 국물이 끓어오르면 솥뚜껑 틈새로 김이 새어 나왔다. 얼갈이배추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 고등어 살에서 배어나오는 담백한 향이 뒤섞이며 부엌 가득 겨울 저녁의 온기가 번졌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고등어추어탕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따뜻한 국물 속에는 단순한 맛을 넘어, 서로를 보듬어주던 시간이 녹아 있었다.


요즘 부산에서는 ‘고등어추어탕’을 파는 음식점을 좀처럼 볼 수 없다. 그래서 가끔은 솜씨 좋은 어머니와 함께 작은 추어탕 집을 열어볼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우리는 가진 것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밥상은 늘 따뜻했다. 시장에서 사 온 고등어에 푸성귀 몇 가지만 곁들이면 값비싼 재료가 없어도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향이 퍼지면, 부족하다는 생각은 저만치 물러났다. 허기를 달래고 온기를 나누는 데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원한다면 미꾸라지 추어탕 한 그릇쯤은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는 형편이지만, 추억 속의 고등어추어탕이 먼저 생각난다. 한겨울 부엌에는 얼갈이배추가 익어가는 풋내와 함께 고등어 살에서 우러나는 담백한 향이 퍼졌다. 좁은 부엌 가득 따뜻한 기운이 차올랐고, 그 국물에 밥을 말아 허기를 달래던 순간, 맛은 입에서는 금세 사라졌지만 마음속에서는 오래 남았다. 세월이 흐르며 더 짙어지는 맛, 내겐 고등어추어탕이 그렇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