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하루가 지켜주는 삶
과장이 기초지자체의 부단체장으로 영전했다. 정기 인사철도 아닌데 직전 부단체장의 갑작스러운 명예퇴직으로 자리가 생긴 것이다. 지금은 직무대리로 발령이 났고 내년 1월 1일자로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면서 직무대리 꼬리표는 떼게 될 것이다. 지방공무원으로서 3급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위라고 여겨진다. 9급으로 입직해서는 넘보기 어렵고 대체로 7급 출신이라야 꿈이라도 꿔 볼 수 있는 자리다.
그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떡과 화분을 들고 집무실을 방문했다. 청사 2층, 복도 끝에 ‘부구청장실’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문을 열자 먼저 부속실이 나왔다. 비서가 앉을 책상과 결재를 기다리는 직원들이 앉을 소파가 놓인 작은 공간이었다. 인사를 건네고 안쪽 문을 열자, 공기가 달랐다. 시청 과장실보다 몇 배는 넓은 공간에 가죽 소파가 놓인 응접 공간이 있었고, 창가 쪽에는 열두 명이 앉을 수 있는 회의용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맞으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7급으로 입직해 기초지자체에서 몇 년을 근무하다가 시에 들어와 여러 부서를 거쳤고, 이제 퇴직을 2년 남겨둔 시점에 이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이 방에서 보낼 시간은 2년 남짓. 그 시간이 지나면 이 공간은 다시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될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그의 관운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승진이 앞선 고참들이 있었음에도 주요 현안을 잘 풀어낸 점이 이번 인사에 크게 반영된 듯하다는 말도 나왔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히 가던 차 안에서, 뒷좌석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재계약이 되지 않아 20년을 다닌 시청을 떠난 여직원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가족들에게 퇴직 사실을 말하지 못해 아침마다 출근하듯 집을 나서고, 낮 동안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저녁이면 퇴근하는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누군가 짧게 “어쩌노…”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그 말을 들었다. 월요일 아침이면 알람을 끄고도 침대에 조금 더 눕게 된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시청으로 향하면서 오늘 처리할 일을 떠올리고, 회의 시간을 확인하고, 점심 메뉴를 고민한다. 지겹더라도 갈 곳이 있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귀찮고 반복되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창밖 풍경을 보며 ‘오늘도 별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던 그 아침들.
그 여직원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도서관 열람실 구석에서 책장을 넘기는 척하고 있을까. 공원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카페 창가에서 노트북을 켜두고 빈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까. 오후 다섯 시쯤 되면 시계를 자주 확인했을 것이다. 여섯 시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20년 동안 드나들던 건물 앞을 지날 때는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혹시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평소 다니던 길을 피해 돌아갔을 것이다.
그는 공무원 생활을 하던 중 소개로 만난 남편에게 자신이 임기제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임기제라 하더라도 업무가 지속되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대체로 5년 임기를 채우고, 재공모 때도 연속성이 고려되어 다시 채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본인도 정년이 보장되는 듯한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명함을 내밀 때마다 ‘시청’이라는 두 글자가 자신을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학부모 모임에서, 친척 모임에서, 동창회에서 “시청에 다녀요”라고 말할 때마다 느꼈을 안정감. 그 안정감이 한순간에 무너졌을 때, 그는 무엇을 잃은 걸까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최근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화재 사고로 시청 내부 메신저가 마비되어 임시로 민간 메신저를 쓰고 있다. 읽지 않은 메일이 스무 통 넘게 쌓여 있었다. 결재 요청, 일정 확인, 검토 독촉…. 늘 반복되는 내용이었지만, 순간 생각했다. 귀찮고 성가신 이 업무들조차 직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일상이란 늘 같은 얼굴로 다가오지만, 그것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허만 남는다. 여직원의 이야기가 떠올라, 쌓인 메일함이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처럼 느껴졌다.
그 여직원도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를 찾았기를, 아니면 적어도 가족들에게 말할 용기를 얻었기를 바란다. 그의 지난 20년이 ‘시청 직원’이라는 이름표로만 남지 않고, 가족과 이웃, 스스로의 삶 속에서 다른 의미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직장을 잃은 것이 곧 자신을 잃은 것은 아니라고, 누군가 그에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그 말을 내게 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