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사 먹는 세상, 그날의 예언을 기억하며

살아남은 콩나물들의 안부

by 박계장

나는 편의점 냉장고 앞에 서서 생수병을 바라본다. 500밀리리터, 한 뼘도 안 되는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긴 물. 가격표에는 1,000원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다. 휘발유 1리터가 1,600원 남짓이니, 리터로 환산하면 물값이 기름값 보다 훨씬 비싼 셈이다. 뚜껑을 비틀어 따며 마른 목을 축일 때마다, 나는 40여 년 전 '도끼다시' 바닥의 차갑고 낡은 교실로 소환된다.


나는 1970년생, 소위 말하는 '70년 개띠'다. 1983년 2월, 뽀얀 분필 가루가 날리던 국민학교 교정을 뒤로하고 졸업장을 받아 들었던 세대. 우리는 대한민국 베이비붐의 정점에서 태어나, 학교라는 거대한 시루 속에서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자라났다.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뉜 2부제 수업은 일상이었고, 한 반에 60명, 많게는 70명이 짐짝처럼 구겨져 앉았다. 짝꿍과 팔꿈치가 닿지 않으려 보이지 않는 땅따먹기 전쟁을 치렀고, 앞사람의 등짝을 책받침 삼아 받아쓰기를 했다.


콩나물시루는 늘 안전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이 한곳에 모이면, 그것은 때로 흉기가 된다.


내 기억 속 1980년 2월, 그날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 문을 다시 여는 개학식 날. 교실에 있던 전교생은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교내 방송이 끝났다. 우리는 일제히 의자에서 튀어 올랐다. 웅성거림은 곧 거대한 발소리, 학생들의 신발이 복도를 타격하는 집단적인 소음으로 바뀌었다.


내가 운동장으로 나선 직후, 1층 복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아이들의 함성이 순간적으로 뭉개지는 소리, 마치 거대한 짐짝이 통째로 쏟아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이내 날카로운 유리 깨지는 듯한 비명과, 쉰 목소리의 선생님 고함이 섞였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좀 전에 내가 빠져나온 저 건물 1층에서 뭔가 큰 일이 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후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학교 전체를 뒤덮으며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에 내 몰려진 아이들 중 몇이 1층 계단에서 굴렀고 그 아이들 위로 뛰어나오든 아이들이 포개졌다.


그 사고로 꽃 같은 아이들 다섯 명이 별이 되었다. 어른들은 '과밀 학급의 비극'이라며 혀를 찼지만, 열살이 되던 나에게 그것은 압사(壓死)라는, 너무 많은 것이 한곳에 모일 때 발생하는 물리적 공포로 각인되었다.


참혹한 사고 이후에도 수업은 계속되었다. 죽음의 그림자를 목격한 아이들은 다시 콩나물시루로 돌아와 앉았다. 여전히 좁았고, 여전히 시끄러웠다. 한 학년이 14반까지 이던 시절이 있었고 내가 6학년이 되었을 무렵, 인근에 용산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10개 학급으로 줄었다.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칠판을 탁, 탁, 치며 뜬금없는 소리를 하신 것은.


선생님은 분필 가루 묻은 손으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너거들, 지금은 당번이 주전자에 따끈한 보리차 받아오제? 더러는 수돗가에 가서 입 대고 벌컥벌컥 마시기도 하고." 아이들은 멀뚱하니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잘 들어라. 너거가 어른이 되면 말이다. 그 흔하디 흔한 물도 돈 주고 사 먹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벌써 그리 하는 나라들이 많다. 기름보다 물이 더 귀하고 비싼 나라가 있다. 우리나라도 물 아껴 쓰지 않으면 곧 그리 될끼다. 물 귀한줄 알거라."


교실 곳곳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이, 쌤요! 거짓말도 정도껏 하이소. 물을 누가 돈을 주고 사 먹십니꺼?" 누군가가 걸쭉한 부산 사투리로 비아냥거렸고, 교실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학교 급수실에서 끓여주는 보리차는 공짜였고, 운동장 수돗가에는 언제나 물이 넘쳐흘렀다. 물을 사 먹는다는 건 공상과학 만화보다 더 황당한 얘기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이셨다.


"두고 봐라. 너거가 나이들 무렵이면 물 살라고 줄을 서야 할 지도 모른다. 물도 가게에서 팔끼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그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좁디좁은 계단에서 서로를 밟고 지나가야 했던 그날의 비극처럼, 한정된 자원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우리 세대의 운명을 꿰뚫어 본 통찰이었을까.


졸업 후 4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편의점에서 '1+1' 행사를 하는 생수를 집어 든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을 때는 리터당 10원이라도 싼 곳을 찾아 헤매면서, 카페에서는 밥값보다 비싼 커피 물을 주저 없이 결제한다. 우리는 아무 물이나 마시지 않는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시던 시대는 사라졌고, 알프스의 빙하수니 백두산의 암반수니 하는 라벨이 붙은 물을 깐깐하게 골라 카트에 담는다.


그 시절, 콩나물시루 같던 교실에서 부대끼며 자란 70년생들은 이제 사회의 허리, 혹은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가 되었다. 70명이 한 반에 있던 학교는 이제 한 반에 20명도 채우기 힘들어 폐교를 걱정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골목에는 노인들의 지팡이 소리만 남았다. 너무 많아서 문제였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너무 없어서 문제인 세상이 되었다.


용호국민학교의 그 소란스러웠던 개학날을 떠올린다. 살아남은 나는, 우리는, 정말 잘 살아낸 것일까. 친구들이 겪은 비극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느꼈던 서늘한 안도감은,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동안 나를 따라다닌 부채감이었을 것이다.


가끔 궁금하다. 그때 그 예언자 같던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실까. 어쩌면 그분도 노년의 어느 날, 마트 진열대에 가득 찬 생수병을 보며 씁쓸하게 웃고 계시지는 않을까. "거 봐라, 내 말이 맞제?" 하고 혼잣말을 하시면서.

나는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병 뚜껑을 비틀어 연다. 한 뼘짜리 플라스틱 통 속에 갇힌 물. 이제 물은 어디에도 넘쳐흐르지 않는다. 정량화되고, 포장되었으며, 가격이 매겨진 형태로만 존재한다. 1980년, 우리는 너무 많은 우리가 통제 불가능한 질량이 되어 서로를 짓밟는 비극을 목격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넘쳐흐르던 자원의 자유를 잃고, 플라스틱 병 속의 투명한 액체에 통제된 안도감을 구매한다. 생수 한 병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 이제는 안전하게 통제되어야만 하는 값비싼 상품이 되었다는 냉정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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