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32년 공직의 기록, 그 길에서 배운 것들

by 박계장

1993년 3월 24일, 첫 출근을 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전날이었다. 발령을 기다리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는데, 다음 날 아침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새벽에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을 출발해 오후 세 시쯤, 베낭을 메고 야전 상의에 워커 차림으로 부산 서구청에 들어섰다. 총무과 담당자가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내일, 정장 입고 다시 오세요.” 하고 웃었다. 그렇게 내 공직 생활은 우연처럼 시작되었다.


1970년생인 나는 1991년 여름, 군 복무를 마치고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김해도서관의 낡은 책상에 앉아 공중보건과 환경위생, 국어와 윤리를 외우던 시절, 세상은 멀고 막막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믿음 하나로 하루를 버텼다. 주일이면 교회에 가고, 금요일에는 청년부 모임에 참석했다. 공부가 막힐 때면 성경책을 펼쳐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시험 전날 우연히 풀어본 화학식 계산 문제가 시험장에 그대로 출제되었고, 그 행운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합격자 명단 속 내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 손끝이 떨렸다. 인생이 단숨에 열리는 문 앞에 서 있었다.


9급 2호봉, 본봉은 25만 원 남짓이었다. 그러나 돈보다 컸던 것은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실감이었다. 그 시절의 공직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움직이는 작은 톱니였다.


내가 맡은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은 ‘개인서비스요금 관리’였다. 짜장면, 이·미용료, 목욕료, 세탁비 같은 생활요금의 상한을 정해 관리했다. 짜장면 한 그릇의 기준가격은 2,200원, 번화가에서는 2,500원, 동네 중국집은 2,000원이 보통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시장의 자율을 억누르던 과도한 개입이었다. 정부는 가격을 통제하면 물가가 잡힌다고 믿었다. 그러나 짜장면 한 그릇의 값까지 정하던 그 시절의 행정은, 생활의 질서를 세우기보다 생동하는 시장의 흐름을 가로막는 일이 더 많았다.


월급은 적었지만 모자라지 않았다. 나의 월급은 집에서 하던 슈퍼마켓 장사 밑천으로 들어갔고, 나는 필요한 만큼의 용돈을 받았다. 서류철의 냄새, 복사기의 열기, 일주일에 두어차례 밤을 새는 심야영업 단속, 그 안에서 나는 공직자가 되어갔다.


몇 해 뒤 IMF가 닥쳤다. 거리에는 실직자가 넘쳤고, 어제까지 멀쩡하던 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어떤 이는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나는 공무원이라는 자리를 새삼 실감했다. 세상이 흔들려도 봉급은 매달 20일에 어김없이 들어왔다. 불안한 시대 속에서 급여명세서 한 장이 한 가정을 지탱했다. 누군가의 절망 위에 서 있다는 죄스러움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붙들었다.


그 이후의 세월은 안정보다 변화의 시간이었다. 정보화가 시작되고, 조직이 개편되며, 행정의 방식이 달라졌다. 종이로 하던 일이 모니터 속으로 들어가고, 보고서는 클릭 몇 번으로 오갔다. 하지만 일의 본질은 같았다. 사람의 문제를 다루는 일, 그 속에서 생기는 끝없는 갈등과 조율. 민원인의 목소리, 상사의 결정, 후배의 실수 사이에서 나 자신을 세우는 일. 매일의 긴장은 나를 닳게도 했지만, 그 긴장 속에서 나는 단단해졌다.


요즘은 젊은 공무원들의 이탈이 늘고 있다. 안정 대신 의미를, 연금 대신 자율을 찾는 세대다.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세상이 변했고, 공직의 역할도 달라졌다. 그러나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 세상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책상 위에서 돌아간다. 불만과 비난의 대상이 되더라도,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공동체는 유지된다.


오래전 어느 기초지자체의 국장이 퇴직하는 날, 청사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그는 “이 직장이 나와 가족을 지켜주었다.”고 말했다. 그 말의 무게를 나도 안다. 이 직장은 나를 키웠고, 나의 젊음을 품었으며, 나의 가족을 지켜주었다. 32년의 세월이 결코 한결같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들이 내 삶의 뼈대를 세웠다.


언젠가 매일 반복되던 출근길이 그리움이 되고, 민원인의 전화 한 통에도 마음을 졸이던 순간들마저 곧 추억이 될 것이다. 하루하루 쌓여 온 일상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되었고, 그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공직자로,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공직은 내게 ‘직업’이 아니라 ‘태도’였다. 정직하게 버티는 법, 책임을 다하는 법,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배우는 자리였다. 누군가의 삶을 돕는 일 속에서 나 또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세상은 언제나 변하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성실’일 것이다. 그 성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이제는 더 나아가야 한다는 조급함도, 누군가와 견줘야 한다는 마음도 없다. 다만 한 세대의 공무원으로서 내 몫을 다했다는 평온함이 남는다. 언젠가 이 자리를 떠나게 되면, 첫 출근 날의 그 긴장과 설렘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그때처럼 나는 말없이 속으로 다짐할 것이다. “이 직장이 내 삶을 지켜주었다.”


그 한 문장 안에 내 지난 32년의 시간이 모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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