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글로 말한다

보고서에 담지 못한 이야기, 브런치에 다시 쓰다.

by 박계장

스물두 살에 공무원이 되었다. 내 또래들은 군대에 있거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나는 구청에서 심야영업 단속을 나가고 세탁업·미용업 신고증을 발급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관인을 찍는 일에는 늘 부담이 따랐지만, 국가와 시민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뿌듯함이 마음을 채웠다. 그렇게 시작한 공직 생활이 어느새 33년이 되었다.


“공무원은 글로 말한다.” 공직 첫날, 과장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다. 공무원의 글은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기록이며, 기록은 훗날 역사가 된다. 그러므로 단어 하나에도 신중해야 하고, 문장은 결코 가볍거나 저속해서는 안 된다. 나는 지금도 그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후배들에게 전하고 있다.


내가 써온 글의 대부분은 보고서나, 시행문이었다. 그 안에는 내 감정이나 삶의 흔적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최종 결재가 나면 글에서 내 이름은 지워지고 ‘부서’만 남았다. 그렇게 30년 넘게 정형화된 글을 쓰다 보니 마음 한켠에는 늘 아쉬움이 쌓였다. 언젠가는 내 목소리로, 내 이름으로, 내 삶을 담은 글을 쓰고 싶었다.


주무관 시절 정신건강 업무를 맡으며 보람을 느꼈고, 나름의 성과도 거두었다고 자부한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팀장이 되어 다시 그 업무를 맡고 있다. 요즘 우리 팀의 가장 큰 현안은 자살 예방이다. 누군가가 끝내 삶을 놓아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무너진다. 언론과 의회는 늘 대책을 묻지만 예산과 인력은 부족하다. 공무원인 나는 사실을 기록하고, 보고서에 숫자로 남기는 일을 한다. 그러나 숫자로 남겨진 그들은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사랑스러운 자식이었다.


답답함은 깊어졌다. 죽음을 숫자로만 표현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나는 자주 무력감을 느꼈다. 그들의 고통과 삶을 조금이라도 온전히 기록할 길은 없을까, 보고서가 아닌 다른 언어로 전할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이 내 안에서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나는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내 이야기를 누가 읽어줄까’, ‘너무 개인적인 고백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결국 용기를 내어 첫 글을 발행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밤의 정적, 발행 버튼을 누르던 순간의 떨림,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낯선 독자들이 남긴 댓글 몇 줄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저도 이런 적이 있어요.”
“위로가 되었습니다.”
“공감합니다.”


나는 누군가를 돕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들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보고서가 아닌 글, 내 목소리로 쓴 글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것을.


그 뒤로 나는 글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낮에는 정형화된 보고서를 쓰지만, 밤에는 자유로운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정리했다. 겉으로는 다른 길 같지만, 결국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은 같았다. 사람을 지키고 마음을 보듬는 일. 다만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처음엔 묵혀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곧 글감이 고갈되자 막막했지만,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좋은 글이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을 붙잡는 일이라는 것을. 출근길에 만난 경비원의 인사, 동료와 나눈 커피 한 잔, 아들과 걸었던 숲길의 낙엽 소리까지 모두가 글감이 되었다. 세상을 떠난 이를 숫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던 무력감은, 일상의 순간들을 기록하며 조금씩 가라앉았다. 글을 쓰는 일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방법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퇴직이 몇 년 남지 않았다. 두렵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보고서가 아닌, 내 목소리를 담은 글을. 내 글이 누군가의 하루에 잠시 머물다 가는 작은 쉼표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브런치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보고서의 문장 안에 갇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는 ‘출간 작가’라는 이름을 꿈꾸고 있다. 브런치는 내게 또 하나의 삶을 열어준 문이다. 스물두 살에 시작한 길이 33년을 이어왔듯, 앞으로는 이 곳에서 새로운 33년을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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