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맞닿은 순간

젊은 날의 설악산, 그리고 인생의 한 페이지

by 박계장

20대 초반, 젊어서 무모하기까지 하던 시절에 친구와 설악산을 올랐다. 야영을 하겠다고 텐트며 코펠, 쌀과 반찬, 거기에 기타까지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일은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다. 맨몸으로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 높고 거친 산을 키만 한 배낭을 메고 기타까지 들고 올랐으니 무모했지만, 그게 바로 젊음이었다.


부산에서 설악산까지 가려면 노포동 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간 뒤, 속초행 버스로 갈아타고 속초에 내려서는 다시 시내버스를 타야 비로소 설악산 입구에 닿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이동에 지쳤지만, 산을 바라보는 순간 피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애초에는 소청대피소에서 야영할 계획이었지만, 당일 부산에서 출발해 곧장 그곳까지 가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냈다. 어둑어둑할 때쯤이었다. 소청대피소라면 대청봉까지 한 시간이면 닿아 일출을 볼 수 있었겠지만, 희운각에서 출발한 우리는 새벽에 두 시간 반을 걸어야 했다. 사실 그날은 날씨가 몹시 흐려서, 소청봉에서 야영을 했더라도 일출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희운각에서의 밤은 나름 풍성했다. 코펠에 쌀을 안치고, 집에서 가져온 김치와 참치로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늦은 밤까지 텐트 안에서 노래를 부르다 지쳐, 카세트플레이어로 지지직거리는 AM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잡음 속에 간간이 흘러나오던 노랫소리와 뉴스 멘트가 지금도 어렴풋이 귀에 남아 있다.


이른 아침에 두 시간 남짓 올라 대청봉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은 건 대청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장엄한 장면이 아니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 그리고 간간이 흩뿌리는 빗방울이었다. 친구와 나는 기타를 꺼내 들고 가스펠송을 목청껏 불렀다. ‘예수 믿으세요’, ‘돌아온 탕자’ 같은 노래였다. 지금 생각하면 산 정상에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것이 다른 등산객들에게는 민폐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창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우리에게는, 그 순간이 믿음을 전하고 청춘을 함께 나누는 낭만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엉뚱한 짓을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문제는 내려오는 길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고, 온몸에 근육통이 몰려왔다. 몇 시간을 거의 기다시피 내려왔다. 그러다 계곡 옆 나무 그늘 밑 너럭바위가 눈에 들어오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달려가 짐을 풀고 땀을 식혔다. 잠시 후 친구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고, 나는 입은 옷 그대로 물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더위 때문이었을까.


얼마 들어가지 않아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이 온몸을 감싸는 순간, 발밑이 꺼지듯 텅 비더니 몸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이렇게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허우적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스쳤다. 퍼덕이지 말고 차분해야 한다는 직감이었다. 나는 몸에 힘을 빼고 물살에 나를 맡겼다. 그러자 천천히 어딘가로 밀려간다는 감각이 전해졌다. 끝없이 가라앉는 줄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발끝에 바닥이 닿았다. 온 신경을 발끝에 모아 살짝 밀자 몸이 사선으로, 그러나 분명히 위쪽을 향해 떠올랐다. 마침내 수면 위로 얼굴이 드러나면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죽다가 살아나서 바위 위에 누워 거칠게 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살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때 까지도, 친구는 세상모르고 자는 중이었다.


죽음을 직면하고 돌아오니 세상이 전과 달라 보였다. 햇빛은 더 눈부셨고, 숲은 더 짙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인생은 어느 날 예고 없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오늘이 마지막이라 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고, 내 마음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전하면서 말이다. 그래야 떠나는 순간이 오더라도 삶 전체가 후회로 남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족이나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아름답다 말한다. 그러나 정작 내가 나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사랑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숨을 쉬는 일이 아니라, 나를 존중하고 아끼는 데서 비롯된다.


그 후로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이 가장 아쉬울까.” 부모에게 더 효도하지 못한 것도, 아내와 자식에게 더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한 것도 물론 남겠지만, 가장 큰 아쉬움은 나 자신을 소홀히 한 세월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내 몫의 기쁨을 내어주기만 하다 떠난다면, 그것보다 허망한 인생은 없을 것이다.


삶은 내일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먼저 잘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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