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을 알 수 없는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
토요일 오후, 늦은 아침을 먹고 잠들었다가 휴대전화 벨소리에 잠을 깼다. 발신번호는 '051-888-****', 시청 당직실 대표번호였다. 휴일에 걸려오는 당직실 전화는 반갑지 않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계장님, 쉬시는 날 죄송합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예전에 같은 국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이었다. 당직반장이라고 했다. 해운대경찰서에서 시청 당직실로 연락이 왔는데, 며칠째 해운대 일대를 배회하던 정신질환자를 보호 중이며, 자·타해 위험이 있어 응급입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러 곳의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환자는 재일교포로, 여권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없었다. 일본 영사관을 통해 가족과 통화는 되었지만, 가족이 보호의사를 명확히 거부했다고 했다. 전화를 받으며 나는 이미 이후의 절차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신원 확인, 보호의무자 지정, 진료비 정산. 그 모든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삶이 걸린 절박한 문제지만, 누구도 선뜻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럴 경우 환자는 발견 지역의 기초지자체장이 보호자의 역할을 하게 되며, 신원을 알 수 없는 행려환자의 예에 따라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민간 병원에서는 절차의 번거로움과 늦어지는 진료비 정산을 이유로 입원을 꺼린다. 비슷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병원은 수익을, 경찰은 보호에 따른 책임을, 행정기관은 절차와 규정을 먼저 따진다. 그 사이에서 환자는 이름도 없이 며칠째 거리를 배회하거나 이 기관 저 병원을 떠돌게된다.
경찰은 환자가 폭력성을 보여 자·타해 위험이 있지만,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면 계속해서 보호할 명분이 없다. 경찰입장에서는 보호라기보다는 사실상 구금에 가까워 그에 따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보호 책임은 행정기관에 있다며 시청의 조치를 요구했다. 이 역시 예상된 수순이었다. 결국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당직실 근무자 입장에서는 난감했을 것이다. 다행히 사회복지 업무 경험이 있던 당직반장이 정신건강팀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그날의 혼란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 대부분의 부서는 비어 있고, 당직근무 매뉴얼에도 명확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시립정신병원 행정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쪽에서도 상황을 알고 있었다. 이미 경찰에서 여러 차례 연락을 했던 모양이었다.
"신원 확인이 안 되면 약 처방도 어렵습니다. 보호자 동의도 없고요."
목소리에는 난색이 역력했다. 그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공공병원이라 해도 운영은 민간에 맡겨져 있고, 진료비를 받지 못하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병원 몫이 된다. 게다가 신원 미상의 외국인 환자라면 행정 절차는 더욱 복잡해진다.
"응급입원이니까 일단 받으시죠. 행정 절차는 뒤에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한편으로는 사정을, 또 한편으로는 압박이라 느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약속한 '행정 절차'가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주민등록번호 부여, 진료비 청구, 퇴원 후 사후관리까지. 그 모든 일이 결국 누군가의 책상 위에 놓일 것이고, 그 누군가는 또 다른 전화를 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공병원마저 입원을 거부한다면, 환자를 보호 중인 경찰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응급환자의 입원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병상 부족이나 인력난 같은 사유를 내세우면 현실적으로 처벌은 어렵다. 결국 '누가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온다. 법은 책임을 규정하지만, 현실은 그 책임을 떠넘기는 방법을 찾는다.
그날 환자는 결국 시립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후 향정신성의약품 전산 입력 문제로 다시 한 차례 혼선을 겪었고, 보호의무를 맡을 기관을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환자를 발견한 해운대구청인가, 환자가 국내에 처음 입국한 부산항 관할 구청인가. 법령 해석을 놓고 여러 기관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최종적으로 환자가 국내에 처음 입국했던 부산항 관할 구청이 보호의무자가 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어둑해진 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느긋해야 할 휴일 오후가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받느라 정신없이 흘렀다.
돌아보면, 공직의 일은 대부분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따지는 일인 것 같다. 법령과 지침은 명확해 보이지만, 현실은 늘 그 틈 사이에 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사람, 보호자가 없는 사람, 국적이 애매한 사람. 그런 이들은 어느 한 조항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전화를 주고받으며 '이 사람은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진다.
가족이 없고, 주소가 없고, 기록이 없는 사람들. 그런 이들의 삶은 늘 행정의 경계선 위에 놓여 있다. 법은 그들을 '행려환자', '무연고자', '신원미상'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에게도 분명 이름이 있었고,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던 사람들이다.
그날의 전화는 그런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환자의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며칠째 해운대 골목을 배회하던 그의 발걸음이 자꾸 떠올랐다. 그가 찾던 곳이 어디였는지, 돌아갈 곳은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병원 침대에 누워 약을 처방받고,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만으로도 그날의 전화는 의미가 있었다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며칠 뒤,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환자의 상태를 물었다. 증상이 호전되어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가족과의 연락도 계속 시도 중이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다행이 얼마나 많은 우연과 선의에 기대고 있는지도 나는 알고 있었다. 만약 그날 당직반장이 정신건강팀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만약 병원 측에서 끝까지 거부했다면, 만약 내가 전화를 받지 못했다면. 그 '만약'들이 쌓이면, 환자는 여전히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