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에 짓눌리지 않고 오늘을 살아내기
회의실 문을 나서며 나는 종종 헛웃음을 짓는다. 그토록 애를 태우며 마음을 졸였던 일이 막상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공직에 오래 있다 보면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다. 수많은 회의와 보고, 심의와 결재가 이어지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대부분 별 탈 없이 흘러갔다. 그럼에도 그때마다 가슴은 쪼그라들 듯 조여들고, ‘혹시나’ 하는 근심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얼마 전이다. 국회에서 우리가 담당하는 사업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국가 예산과 시 예산을 함께 투입하는 매칭 사업이었는데, 본래 계획의 절반 가까이가 줄어든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남는 예산이 많았을 터라 삭감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삭감 폭은 지나쳤고, 특히 우리 시는 전국 평균보다 15%가량 더 많이 줄어 언뜻 보기에 사업을 허술하게 운영했다는 오해를 살 만했다.
삭감된 사업은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 사업’이었다. 2003년 이후 줄곧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해 온 한국에서, 국민 누구나 민간 상담기관에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였다. 취지는 절실했으나 한계도 분명했다. 상담 인력은 전문의가 아닌 민간 자격증 소지자가 대부분이었고, 기관은 수도권에 치우쳐 부산은 참여율이 낮았다. 여기에 정신질환이나 상담 이용에 대한 사회적 편견까지 겹쳐 이용률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국회의 대폭 삭감은 사업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국장은 시의회 심의를 앞두고 예민해져 있었다. “시민이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국장이 긴장하니 나 역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부터 머릿속은 예상되는 의원들의 질문과 그에 맞는 답변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로 가득 찼다. 국장이 답하기 편하도록 답변 시나리오를 여러 번 다듬었지만, 불안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심의 당일, 대회의실은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했다. 부시장을 비롯한 국장들이 줄지어 앉고, 백여 명의 공무원들이 뒤편에 빽빽이 자리했다. 나와 담당 주무관은 의원들의 입술 움직임 하나, 눈빛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곤두세웠다. 시간이 흘러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졌지만, 끝내 우리 사업의 감액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이미 국회에서 줄어든 국비에 맞춰 시비를 조정한 것이었으니, 시의회가 굳이 문제 삼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곤두세운 신경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런 불안은 직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건강검진 결과를 기다리며 이미 머릿속에서 병명을 진단하고 치료 계획까지 세운 적이 있다. 동료와 사소한 말다툼이 있고 나면, 혹시 노조 게시판에 갑질 상사로 이름이 오르내리지는 않을까 상상하며 며칠을 불안에 떤 적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우였다. 검사 결과는 양호했고, 동료들과도 별 탈 없이 지냈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나는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날 의회를 나오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는 왜 아직 오지도 않은 일에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걸까. 현실보다 더 큰 짐은 언제나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 두려움이었다. 윈스턴 처칠이 말했듯, “나는 인생에서 수많은 걱정을 해왔지만, 그중 대부분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짊어지는 근심의 상당수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마음속 그림자일 뿐이다.
그렇다고 걱정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불안은 그림자처럼 우리 곁을 따라다니며 때로는 삶을 지탱하는 경계심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그림자에 짓눌리지 않는 일이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똑바로 걸어가는 것, 오지 않은 내일을 붙잡느라 오늘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걱정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그 그림자를 안고도 한 걸음씩 걸어갈 때, 삶은 조금은 가벼워지고, 근심 또한 삶의 일부로 품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