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의 시선으로 본 관료제의 질감
부산시청 14층. 사회복지국과 시민건강국이 공존하는 이 거대한 사무 공간은 이중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부서 간의 경계는 가슴 높이의 파티션이며, 부서 내는 앉았을 때 앞사람 머리가 살짝 보이는 정도의 낮은 벽이다.
'소통'과 '개방'을 표방한 설계라지만, 일어서는 순간 타인의 빈자리, 수화기를 든 동료의 말소리, 긴장된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감시의 평원'에 다름 아니다.
모두의 일거수일투족이 공유되는 이 평원의 끝자락에는, 유일하게 천장까지 벽을 세워 안을 가린 방이 하나 있다. 바로 국장실이다.
5급 계장인 내 자리에서 국장실까지는 직선거리 20미터. 성인 남성 보폭으로 서른 걸음이면 닿을 거리다. 문은 청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회색이지만, 그 앞을 지키는 부속실은 보이지 않는 해자(垓字)처럼 외부인의 출입을 거른다. 저 평범한 문을 열고 들어가 그 방의 주인이 되기까지, 한 남자는 35년을 썼다.
9급 서기보에서 3급 부이사관까지 12,700일. 그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실패할 권리'를 반납하며 버텨냈다. 그 세월은 그를 고위 공직자라는 정점에 올려놓았으나, 동시에 저 닫힌 방 안에 완벽하게 고립시켰다. 나는 5급 4년차다. 9급으로 시작해 나 역시 33년의 세월을 이 조직에 바쳤다. 사람들은 3급과 5급의 차이를 단순한 계급으로 셈하겠지만, 나는 안다. 그와 나의 몇 년의 시차는 내가 비켜 선 길이 아니라, 그가 온몸을 던져 기어이 감내해 낸 압축된 고통의 총량임을.
남은 시간 4년. 사실 국장이라는 고지는 내게 욕망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물론 누군가는 9급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저 방에 입성한다. 하지만 나의 보폭과 속도로 계산해 보았을 때, 그곳은 애초에 내 시간표 안에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것은 최근의 체념이 아니라, 지난한 공직 생활 중 일찌감치 받아들인 나의 그릇에 대한 명백한 상수(常數)였다. 이 명징한 한계 인식은 내게 패배감이 아닌, 욕망이 한 꺼풀 벗겨진 냉철한 시야를 선물했다. 나는 이제 조직의 내부자이자 외부자인 '경계인'의 눈으로 14층을 본다.
공직 사회의 시간은 달력과 무관하게 흐른다. 5월과 11월, '근무성적평정' 시즌은 두 번의 수확기이자 심판의 계절이다. 이 시기의 14층 공기는 젖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는다. 키보드 소리는 낮아지고, 복도를 걷는 발소리는 자기 존재를 지우려는 듯 조심스럽다. 지난 6개월의 노고가 '승진 후보자 명부 순위' 1, 2, 3, 4라는 숫자로 치환되는 엄중한 시간이다.
이 기간, 국장실은 행정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가장 고독한 고해소가 된다. 시스템은 공정을 말하지만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정량화할 수 없는 야근과 헌신이 국장의 펜 끝에서 냉혹한 등수로 환산되는 과정은 밖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잔인하다.
불안은 인간을 비굴하게, 때로는 절박하게 만든다. 평소 묵묵하던 직원들이 국장실 앞을 서성이고, 오래전 승진을 위해 국장의 자택 현관까지 찾아가 읍소했다는 한 직원의 일화는 여전히 전설처럼, 혹은 악몽처럼 회자된다. 부속실의 전화벨 소리가 흡음재 없는 벽을 타고 날카롭게 울린다. 면담을 마친 직원이 나올 때, 문이 닫히는 소리는 유독 길고 둔탁하다. 닫힌 문의 매끄러운 회색 표면은 조직원들의 희망과 좌절을 얇게 덧바른 유화처럼 번들거린다.
예산 심의나 의회 업무보고 같은 '전투'가 끝난 밤이면 회식이 열린다. 삼겹살 굽는 연기 사이로 리더를 향한 찬사가 쏟아진다.
테이블 상석, 국장의 빈 잔이 채워지고 건배 제의가 끝나면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화답한다. 술잔이 돌 때마다 "국장님, 국장님" 하는 호칭이 돌림노래처럼 이어진다. 하지만 그 노골적인 찬사의 이면에는, 다가올 인사의 향방이 국장의 손끝에 달려 있음을 아는 직원들의 계산된 절박함이 깔려 있다. 직원들이 국장의 잔에 따르는 것은 술이 아니라, 좁은 승진 문을 통과하고 싶은 액체화된 욕망이다. 국장의 펜 끝이 매기는 등급 하나가 승진 대기열의 가혹한 순서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비좁은 문을 통과하는 사람이 옆 동료가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는 비정한 생리를, 이 웃음 뒤에 숨은 모두가 뼈저리게 알고 있다.
"국장님 덕분에 이번 예산 방어는 완벽했습니다!"
한 주무관의 헌사에 국장은 굳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사래 치지 않는다. 그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어둔 채 말없이 빈 소주잔을 만지작거릴 뿐이다.
부산시 전체 공무원 19,000명 중 3급 부이사관은 0.2%에 불과하다. 희소한 확률을 뚫고 올라온 생존자. 그러나 직원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아내는 국장의 눈빛은 공허하다. 그는 이 소란스러운 충성이 '나'라는 인간이 아니라 내가 걸친 '직위'를 향한 구애임을 간파하고 있다. 직원들은 권력의 동아줄에 매달리고, 국장은 그 절박한 눈동자들 속에서 타인의 명운(命運)까지 짊어진 책임의 무게를 확인한다. 술잔이 부딪칠 때마다 쨍하고 울리는 소리는, 서로의 고독을 확인하는 파열음이다.
다음 날 아침, 국장실 문이 열리고 결재 시간이 돌아온다. 결재판을 펼치는 국장의 표정은 간밤의 술기운이 씻겨나간 듯 경건하다. 35년을 버틴 사람이라기엔,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매 순간의 결정에 대한 깊은 긴장감이 서려 있다.
내가 한때 견고한 성채의 주인이라고 동경했던 그는, 사실 그 성채가 무너지지 않도록 매 순간 긴장하며 떠받치는 대속양(代贖羊)이었다. 35년의 세월은 그에게 높은 직급을 주었으나, 동시에 작은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살얼음판을 선물했다. 권한은 위에서 제한되고 책임은 아래로 무한히 전가되는 관료제의 설계 속에서, 그의 고독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다.
이제 나는 14층 사무실에 앉아 고개를 돌려 20미터 떨어진 국장실 벽을 응시한다. 예전에는 그곳이 넘을 수 없는 절벽처럼 보였으나, 경계인의 눈을 얻은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 그곳은 승리자의 트로피 룸이 아니라, 조직의 모든 고통과 책임이 최종적으로 수렴되는 '방음 없는 방'이다.
나의 남은 4년. 나는 더 이상 위를 보며 질주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옆을 보고, 앞을 볼 것이다. 승진이라는 좁은 문을 향해 달려가는 동료들의 치열함을 이해하고, 그 정점에서 홀로 책임을 감당하는 리더의 뒷모습을 연민할 것이다.
나는 기록한다. 거대한 관료제의 톱니바퀴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오늘을 견뎌내는 우리들의 모습을. 우리가 '성실함'이나 '미덕'이라 이름 붙이며 견뎌온 그 체념의 시간들이, 사실은 조직이 한 인간의 영혼에 가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잔인한 폭력의 과정이었음을 증언하기 위해서다.
35년 만에 그 방에 들어간 그를 위해, 그리고 33년을 버텨온 나를 위해, 나는 오늘 하루치 결재 서류를 정성껏 넘긴다. 이것이 퇴직을 앞둔 5급 사무관, 경계인으로서 내가 수행할 마지막 공무(公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