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를 넘어, 각자의 방식으로 빛나는 우리들
오늘 아침, 후배가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생활체육 농구대회에서 MVP로 선정되어
자축의 의미로 15층에 있는 나의 친구까지 함께 불러 커피를 한 잔씩 대접한 것이다.
그는 부산시장배 생활체육 농구대회에서 소속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MVP의 영예를 안았다.
수요일 저녁, 주말이면 어김없이 모여 연습하고, 인근의 직장인 농구팀과 친선경기도 자주 가진다.
그가 속한 팀은 처음엔 중·고등학교 친구들끼리 건강을 챙기기 위해 만든 작은 모임이었다.
직장을 마친 저녁시간, 주말마다 땀을 흘리며 웃던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팀의 형태가 갖춰졌고,
시간이 지나며 각자의 지인들이 하나둘 합류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부산에서 생활체육 농구팀으로 제법 이름이 알려진 팀이 되었다.
공식 대회에 참가하고, 인근 직장인 팀들과 친선경기에서 뒤지지 않을 만큼 조직력도 탄탄하다.
팀에는 홍일점 여성 멤버도 있다. 나이는 44살이고 후배보다 한살이 어리다.
학생 시절 농구선수였던 친구인데, 가끔 남자 선수들간 경기에 출전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실력이라 한다.
그가 말하길, “그 친구가 중심을 꽉 잡고 있습니다. 본래 다른 팀 선수였는데 영입했습니다.”
말 끝엔 웃음이 묻어났지만, 그 의미를 자세히는 모르겠다. 그냥 좋은가 보다.
한동안 그는 슬럼프였다고 했다.
경기 중 패스를 받고도 골을 넣지 못할 때, 동료들의 눈빛이 무서웠단다.
경기를 망쳤다는 자책, 혹시 내가 팀 분위기를 흐리진 않았을까 하는 불안.
그럴 때마다 몸이 굳고, 손끝이 떨렸다.
그러다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단다.
상담가는 말했다. “패스가 들어올 때,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 성공했을 때의 느낌을 먼저 떠올려보라”고.
공이 네트를 흔드는 소리, 관중의 함성, 동료들이 다가와 등을 두드리는 장면을 상상하라고 했다.
그렇게 하나둘 시선을 바꾸고 나니, 몸도 가벼워졌단다.
이상하게도 경기력이 달라졌다고 했다.
지금 그는 연전연승 중이다.
각종 친선경기와 공식대회에서 중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예전엔 ‘제2의 전성기’라는 표현을 썼겠지만, 그보다는 지금이 ‘가장 자기다운 시간’이 아닐까.
또 다른 친구가 있다.
올해 쉰넷이 된 그는 봄이 시작되면 바다로 향한다.
주말마다 바다수영을 즐기고, 평일엔 빠짐없이 헬스장에 들른다.
그의 몸은 군살 없이 단단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늘 활기차다.
젊은 시절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했던 그는 지금도 활동적인 걸 좋아한다.
시청에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친화력도 좋다.
그에게 물었다. “지금이 제일 좋냐”고.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지금이 딱 좋다. 내 인생에서 제일 좋을 때.”
나는 어떤가.
조용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농구도, 바다수영도 생경한 이야기다.
사람 많은 자리는 늘 어색하고, 북적이는 분위기에는 쉽게 지친다.
대신 조용한 방 안에 앉아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나에겐 잘 맞는다.
승진을 하고, 직장생활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만 하던 글쓰기.
지금처럼 이렇게 마음을 글로 풀어내는 일이 나에겐 크나큰 활력이다.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나와 다시 친해지는 과정 같다.
나도 지금이 괜찮다.
황금기라는 단어보다, 나는 지금 내가 가장 ‘나답다’고 느낀다.
살다 보면 누구나 지친다.
특히 중년의 직장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거나, 어떤 것도 재미없게 느껴질 때,
무기력감은 몸보다 마음을 먼저 무너뜨린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번아웃이 찾아온다.
삶이 흘러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삶이 밀려간다는 느낌.
그런 시간들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나는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보기 좋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리듬을 만들고, 활력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농구를 한다.
누군가는 바다를 헤엄친다.
나는 글을 쓴다.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자신답게 살아내는 사람들.
그들이 참 좋다.
그리고 오늘의 나도, 나쁘지 않다.
농구공이 손을 떠나 골망으로 빨려가듯,
내가 쓴 글도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따뜻한 위로가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