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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aemin Apr 07. 2023

혁명, 관찰자, 내면 -3

이미상, 『이중작가초롱』(2022) 서평

(2) 자아 형성, 네트워크불안     


  『이중작가초롱』의 초반부의 두 소설은 ‘혁명의 개인화’를 다루는 오늘날의 문학이 과거의 믿음과 현재의 자아를 어떻게 조정·화해시켜 나갈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이 온전히 나 그 자체만으로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삶의 궤적과 전망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자아는 자신의 내면을 온통 자기 자신으로 채울 정도로 충분히 비대할 수는 없다. 개인의 내면은 벌충할 타자의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프로이트 이래 정신분석학자들이 가르쳐주듯이, 인간의 정신이란, (대) 타자나 타인의 시선이 나를 보고 있다는 인식으로 자기를 실감하는 주체화 과정의 산물이다. 타자의 자리가 없이 온통 자기만으로 채워진 내면이란 자아를 인식할 수 없는 상태나 다름없다. 

 문제는 어떤 타자/타인이냐는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내적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곁을 내주는 모든 타인/타자가 의식의 산물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경우 의식적으로 선택되기도 한다. ‘혁명의 개인화’와 관련된 문학적 형상은 대체로 개인의 내면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지켜볼 타자/타인의 자리를 마련하거나 그 빈자리를 수습하는 문제를 다룬다. 「하긴」의 ‘나’와 「그친구」의 규 또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두 소설의 주인공들은 각각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자기 세대의 과제를 잊지 않는 의식 있는 위대한 아버지, 남편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서 있는 사회적 공간에 서 있음을 확인할 관객/관찰자(spectator)의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불완전하게나마 가꿔가는 존재들이다.

 내면에 마련된 관객의 자리는 단순히 자아 형성과 인식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이나 주체의 정치와 윤리적 감각의 근간이기도 하다. 한나 아렌트는 칸트철학의 윤리적 사고에서 취미판단의 정치적 의미를 흥미롭게 재평가한 바 있다. 칸트는 프랑스혁명 같은 위대한 인간의 역사적 발자취가 이를 수행한 당사자가 아니라 무대 바깥의 관찰자가 결정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칸트철학의 난제 중 하나였다. 아렌트는 이를 해명하는 방법으로 칸트철학의 취미판단 영역의 정치성에 주목했다. 기존 칸트철학의 해석에서 취미판단은 감각적인 주관적인 문제에만 관여하는 비정치적 영역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아렌트는 칸트철학에서 취미판단이 주관적 자의성 차원으로 축소하는 것은 칸트가 남긴 정치적·윤리적 사유에 대한 전적인 오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만약 진리가 전적으로 증명에 의존하여 완성된다면 거기에 인간이 개입할 자리는 없을 터인데, 그렇다면 궁극적인 논증과 이에 해당하지 않을 모든 인간적 활동은 분리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주관적 감각에 의존하여 발화되는 취미판단은 자신의 진리를 객관적으로 논증이 아니라 타인을 상대로 한 설득으로 진리에 도달한다. 자신의 역할만을 연기하는 행위자는 오직 부분적인 전망만을 가질 따름이며 그 전체의 의미 여부는 이를 판단할 관찰자에 달려 있다. “만일 관찰자에게 일차적인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주목할 만한 사건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나’와 규는 각자가 내면에 상정한 관찰자를 통해 ‘혁명의 개인화’의 내적 양식을 마련한다. 그 결과가 그들에게 내적 평온이 아니라 참혹함을 선사할지라도 어쨌든 자신들의 사적 행적에 부합하는 관찰자들을 통해 일관된 자아상을 애써 유지한다. 물론 ‘나’의 경우 그것이 갈수록 어려워져 갈 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쨌든 주관적인 미적 판단에 입각한 관객을 향한 일방적인 발신으로 자신의 내면을 위태롭게나마 지켜나가기는 한다.

 그러나 세 번째 소설 「이중작가초롱」의 주인공인 초롱에겐 이런 행운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 텍스트는 소셜 미디어 영역에서 일어난 ‘문화혁명’의 여파로 어처구니없는 사이버불링 사건의 당사자가 된 한 젊은 작가의 초상이다. 사건은 초롱의 등단작 「테라바이트 안에서」의 모티브가 담긴 미발표 습작품 「이모님의 불탄 진주 스웨터」가 한 익명의 사용자에 의해 무단으로 게시되면서 시작된다. 불특정 다수의 관찰자들이 이 정체불명의 게시물이 올라온 이유를 궁금해하는 상황에서, 익명의 관찰자에 의해 초롱의 등단작과 습작품의 관계가 ‘붙여서는 안 될 것을 붙인’ 비윤리적인 행태로 비판된다. 비평을 빙자한 익명인의 ‘뇌피셜’에 불과할 이 억지 논평은 공교롭게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관찰자를 자극한다. 이후 소셜 미디어에는 초롱의 등단작과 습작품 사이의 관계로 초롱을 비난하는 게시글이 범람하는 사태가 초래된다.

 졸지에 사이버불링의 피해자가 된 초롱은 이를 색출해 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사태는 해결은커녕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된다. 초롱에 대한 온라인에서의 비판이 과거 그녀의 모든 행적을 발견하여 이를 재료로 그녀의 인격과 존재를 희롱하는 ‘이차창작’이 범람하는 사태로 치닫게 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초롱에 대한 대상화를 넘어 사용자가 초롱을 참칭 하는 글이 증식하고, 초롱은 존재 자체가 사이버스페이스 상의 허구적 존재가 되고 만다. 자신의 행적과 자신을 참칭 한 모든 행적이 통째로 뒤섞여 원래의 인격과 무관한 사이버 ‘공공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익명의 관찰자들은 또 다른 이차창작의 대상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초롱은 그 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 습작품과 등단작 사이의 연관이라는 심연에 끝도 없이 몰두하며 내적으로 침잠한다.      


  그리고 육 개월 뒤에 새로운 사건이 터진다. 아니다. 새로운 사건은 계속 있었고 그제야 밝혀진다. 초롱은 깨닫는다. 수진은 명자를 그렇게 씩씩하게 찾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수진과 명자는 화해해서는 안 되었다. 초롱은 자신이 붙여서는 안 되는 것을 붙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제3의 원은 무엇이었나? 초롱이 「이모님의 불탄 진주 스웨터」를 쓸 때.     


 「이중작가초롱」은 당사자의 행위나 존재의 의미가 관찰자의 주관적인 취미판단에 전적으로 맡겨질 때 당사자의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파장에 대한 소설로 읽힌다. 이를 가능케 하는 물적 토대가 소셜 미디어라는 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초롱은 아렌트가 제시한 칸트철학의 미적 취미판단의 정치적 효과가 극단적으로 발휘되는 오늘날 소셜 미디어 광장에 내맡겨진 현존재가 감내해야 할 극단적인 고초를 겪는다. 「하긴」의 ‘나’나 「그친구」의 규 같은 기성세대의 ‘혁명의 개인화’는 비록 그 참혹할지언정 과거와 현재의 나의 시차를 스스로 조정하여 자기 스스로 문학적 내면을 조정하는 데 성공한다. 반면에 초롱은 소셜 미디어 환경에 연결됨으로써 과거 자신과 현재 자신이라는 시차를 설정할 내적 자아를 조정·형성할 주도권을 관찰자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 결과 관찰자에게 자아를 강탈당한 이차창작으로 사이버스페이스를 떠도는 존재로 전락한다. 

 초롱이 겪는 모든 고초와 그의 헝클어진 인격은 「이중작가초롱」이 소셜 미디어가 사회문화적 혁명의 핵심 매체가 된 이후 ‘혁명의 개인화’의 디스토피아적 내면 풍경을 암시한다. 소셜 미디어는 연결되자마자 마치 아무런 시차 없이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주목과 이를 염두에 둔 자아의 전시를 특성으로 한다.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개인적 행동을 사회적 변화와 도약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중작가초롱」에 이은 「여자가 지하철 할 때」 또한 이에 참여한 개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인지적 양태를 포착한다. 이 소설은 궁극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 수진이 지하철 탄 이십 분 동안 끊임없이 분열하면서 눈에 보이는 승객들에 대한 파편적인 대상화와 여성으로서의 공포가 맥락 없이 뒤섞인 인지와 인식을 상연한다. 그것은 시차 없는 전 세계적 ‘열린 광장’에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혁명에 참여하는/했던 개인의 내면은 현존재와 소셜 미디어의 시차가 뒤엉킨, 동 시대성 그 자체에 응답하는, ‘복잡한’ 독백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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