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8시 40분 터무니없이 늦어버린 시간이다.
대뇌피질을 뒤적거리며 시간계산을 끄적일 필요도 없는, 완벽한 기상시간이다.
이런 끔찍한 사건의 경위는 심각할 정도로 시시한 사유로 귀결된다.
학업을 끝내고 돌아오던 밤길, 편의점 건널목의 가로등이 무슨 일인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잡담을 하며 지나가거나, 완두콩 같은 이어폰을 꽂고 지나가는 길이였기에, 가로등의 존재조차 그때 알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길목이었다.
당시에는 고심하기 짝이 없다 생각하곤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유달리 어두운 곳을 싫어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에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가는 것이 무서워, 필히 지나가야 하는 학원을 끊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나이 19살에 그런 공포는 꽤 말라비틀어졌지만, 불모지에도 미생물들이 살기 마련이었다.
고민을 어느 정도 했을까, 휴대폰도 방전된 상태라 시간을 느끼는 것은 스산한 정도를 수치화하는 것과 같이 추상적이었지만, 거진 10분 이상 지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10분 시간의 결괏값은 초등학생의 사고와 별반 차이가 없던 것이다.
10m 정도 뛰어가면 숨 고르기 바쁜 나에게,
대략 200m 정도의 장황하고 아득하고 오싹한 길을 뛰어가라는 재앙 같은 판결을 스스로에게 내린 것이었다.
더군다나 체감상 5kg는 족히 되는 가방을 둘러메고 있으니, 신이 내리신 시련이라기보다 악마가 장난친 것에 가까웠다.
마음을 다잡고 뛰기 시작했으나, 어림잡아 세우던 목표지점이 생각보다 훨씬 뒤에 있던 터라
없던 힘도 빼앗기고 말았다.
듣기 흉한 소리를 거침없이 내지르던 자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시 떠오르던 것들은 캄보디아 범죄조직이 기습적으로 나타나 협박하는, 무시무시한 것들 뿐이라 사치라는 표현이 적합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정신적 공세를 이겨낸 뒤, 너무나 반가운 가로등 불빛을 볼 수 있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얼굴에 묻은 것이 없는지 쓱쓱 닦아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간과하고 있던 것은, 겨드랑이 기준으로 광활하게 퍼져나간 땀방울 줄기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챈 시기는 집에 돌아가 겉옷을 벗었을 때였다.
주옥같은 땀방울이 이불 이곳저곳에 스미는 미친 상황은 결코 일어나선 안되기에, 온몸 구서구석 뜨듯한 물로 씻어내었다, 느긋하게.
이후에 거실에 놓인 시계를 처다 보았을 때 시침과 분침은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헐레벌덕 이불로 침투하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게 어지간히도 힘든 몸은 3단계의 알람세례를 버텨내었다, 자랑스럽게.
최후전선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께서는 아침 일찍 나가신 모양이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도덕성을 배반할만한 짤막한 문자를 선생님께 전달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철저한 이상주의자이기에, 아무리 3학년 2학기라 하더라도 노발대발하며 따가운 설교를 하실 것 같아, 문자는 선생님에게만 보냈다.
안심이 되었는지 못돼 먹은 정신은 나를 이불로 끌고 갔다.
1시간 정도 지나고 일어나자 세상이 너무나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