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여러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마찰을 겪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점은, 같은 편인 사람들끼리 오히려 더 부딪힌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더 오래 붙어있고, 익숙해지기 때문에 부딪힐 확률도 덩달아 높아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나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마치 무엇에 씌인 것 마냥 알아보지 못하고 적을 대하듯 으르렁대는 착오를 범하곤 한다. 이와 관련해서 프렌즈에서 시즌1 내내 메인 갈등을 일으킨 삼각관계를 소개하고자 하는데, 이는 로스와 캐럴 그리고 수잔의 이야기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로스와 캐럴은 이혼한 사이이고 그 이혼 사유는 캐럴이 알고 보니 레즈비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캐럴이 로스와 이혼하고 사귀게 된 새로운 애인의 이름은 수잔이다. 다소 황당한 이혼 사유이지만 그렇게 로스는 이혼을 당했고, 캐럴의 새로운 동반자인 수잔을 굉장히 미워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캐럴은 로스와 이혼하기 직전에 아기를 임신하게 되고, 비록 로스의 친아들이지만 이 아이를 수잔과 함께 기르겠다고 통보한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로 인해 이 세 사람 사이에서는 다양한 갈등의 상황들이 존재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아이가 누구의 성을 따라가야 하냐, 아이의 이름은 어떻게 지을 거냐 등의 갈등이 있었다.
사실 로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이를 뺏기는 것과 매한가지인 상황임과 동시에, 그들이 자신에게 아이의 이름을 결정할 권리조차 주지 않아 더욱 화가 나버린다. 그렇지만 수잔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동반자인 캐럴이 낳게 될 그 아이를 기꺼이 사랑을 가득 담아 길러낼 생각인데 단순히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것도 억울할 법하다. 이처럼 갈등이 지속되다 보니, 세 사람은 출산 당일이 될 때까지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정하지 못하고, 만날 때마다 신경전을 벌인다.
이 지독한 갈등의 에피소드는 로스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캐럴의 진통이 시작되어 대망의 출산 당일이 된 날의 이야기를 담았다. 역시나 병원에 와서도 로스와 수잔은 계속해서 아이의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 것이냐에 대해서 싸웠다. 그 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옆에 있던 피비는 두 사람을 병원 내의 창고방으로 데려가 진정시키려 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창고방의 문이 저절로 잠겨서 세 사람이 완전히 그곳에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 창고에 갇혀있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끔찍해서 세 사람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지만 아무도 그들의 다급한 구조요청을 듣지 못하는 듯했다. 상황이 긴박해지며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진 로스와 수잔은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싸웠다. 싸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Ross :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아이가 태어나면 당신은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지만, 저한테 남는 게 뭐죠?
Sujan : 당신은 아이의 아빠가 되잖아요, 모두가 당신이 아빠라는 걸 알아주는데 저는 뭔가요? 엄마의 날, 아빠의 날은 있지만, 레즈비언 동반자의 날은 없다고요!
Ross : 매일매일이 레즈비언 동반자의 날이면서!!!!
(이를 지켜보던 피비가 뜬금없이 말한다)
Pheobe: 이 상황이 너무 좋아 보여요, 저는 어릴 때 아빠는 집을 나가고 엄마는 자살을 해서 저를 케어해 줄 부모가 한 명도 없었는데, 이 아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도 세명의 부모가 서로 내가 더 사랑해 줄 거라고 싸우고 있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아기라고 생각해요.
Ross & Sujan : ... (생각에 잠기며 싸움을 멈춘다)
피비의 말을 통해 두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두 사람의 생각을 내가 직접 확인해 볼 방법은 없지만 왠지 짐작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로스와 수잔은 그동안 항상 서로를 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로스의 입장에서 수잔은 '내 아이와 아내를 뺏은 사람'이고, 수잔의 입장에서 로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동반자 아이의 친부로서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그 둘은 만나기만 하면 항상 싸우고 서로를 견제했다. 그런데 피비의 말을 들어보면 두 사람은 적이 아니라 한 편이다. 곧 태어날 사랑스러운 아이의 부모이자, 누구보다 그 아이를 기다리고 사랑해 줄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원래 적이었던 두 사람은 미우나 고우나 어쩔 수 없는 한 팀인 거다. 그렇게 피비의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로스와 수잔은 극적으로 창고방에서 탈출하고 아이가 태어나는 최고의 순간을 함께 맞이한다.
그렇게 조금 뒤 세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하여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아이의 이름을 'ben'으로 짓는다.
우리가 누구와 한 팀인지 잊어버리는 일은 의외로 쉽다. 심지어는 애초에 한 팀이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대상이 내가 바라는 것을 같이 기도해 줄 사람인지 아닌지,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괜한 분노와 억울함으로 나의 기분이 널뛸 때 잠시 숨을 고르고 멈춰서 내가 지금 나와 한 팀인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어찌 보면 전쟁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적군과 아군 정도는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