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그리고 듣기

길가의 나무에게서 배우는 조용한 삶의 힘

by 꿈쟁이

길.

모든 이에게 열린 길도 있고

특별한 이에게만 허락된 길도 있습니다.


오늘은 문득

길가에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달리며

소리 내어 살아가느라

놓쳐버린 풍경들.


나무들은

한 자리에서 끊임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묵묵하게 그 자리에서

봄비와 겨울 눈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두 맞이했을 텐데.


소리없이 서있는 그들에게서

들음의 지혜를 배웁니다.


수많은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침묵하는 나무처럼

귀를 기울이는 법을 잊었던 건 아닐까.


목소리를 내기 전에

듣는 귀가 먼저 열리길.

오늘 하루 기도합니다.


말하기보다 먼저 듣는 삶.

나무처럼 묵묵히,

그리고 깊이.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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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야기

매일 걷는 경의선숲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한때는 기차가 쉼 없이 오가던 철로였던 이곳이,

이제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산책로가 되었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기찻길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우리에게 그 시간을 속삭입니다.

철길을 따라 길게 뻗은 건물들, 옆으로 흐르는 잔잔한 물길,

그리고 육교 아래로 분주히 오가는 자동차들까지.

모든 것이 각자의 방향으로, 각자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 서둘러 지나가던 산책길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그 존재감이 오늘은 유독 크게 다가왔습니다.

오래된 나무의 굵은 줄기와 깊은 주름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기차가 처음 이곳을 지나갔을 때부터, 철길이 걷히고 공원이 조성되기까지.

이 나무는 그 자리에서 모든 변화를 묵묵히 듣고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바람 소리, 때로는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까지.

이 나무는 모든 것에 귀 기울이며 봄비와 여름 햇살, 가을 바람과 겨울 눈을

고스란히 맞으며 성장해왔을 테지요.


이 나무를 바라보며 문득 내 삶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과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과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을까요?

누군가는 잠시 머물다 떠났고, 누군가는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듣기보다는 내 생각과 말로 채웠던 순간들이 더 많았던 것은 아닐까요?


나무는 매년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며 성장합니다.

모든 소리를 듣고, 모든 계절을 받아들이며 더 단단해집니다.

풍요로운 해에는 두껍게, 척박한 해에는 얇게. 그렇게 자신의 일부로 모든 것을 수용합니다.

과연 내 마음의 나이테는 어떤 모습일까요?

말하기보다 먼저 귀 기울이는 삶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더 깊고 풍요로워졌을까요?


나도 오늘만큼은 말하기 전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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