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있다는건, 사랑할 상대가 있다는건 그 자체로 축복이고 행복이었다.
언젠가부터 잊고 지내왔지만, 분명 그것은 그 자체로 행복을 주었다.
오랫동안 나의 감정은 변화가 없었다. 작아질대로 작아진 내 감정은 요동치지도, 파도가 치지도 않는 작은 컵에 담긴 물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좋은 줄 알았다. 파도란 올라가는 것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내려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거친 바다라도 한없이 파도를 끌어올릴 수는 없기에.
그래서 나는 평화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잔잔함이 주는 고요함은 그 자체로 겪어본 적 없는 평화였다.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화가나서 감정이 요동치는 그런 경험은 이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사랑이란 것은 좋은 만큼 힘든 것도 견뎌야 하는 등가교환을 가진 것이었다. 행복한 만큼 불행을 겪어야 하는, 하지만 그 행복이 좋아 놓지 못하는 마약같은 존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마지막 감정의 요동침이 끝났을 때 더는 흔들리는 감정을 갖지 않겠다 다짐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기에,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참 신기하다.
오랜 외로움이 이제는 날카로움을 잃고 그 단단함을 잊을때쯤 나는 새로운 만남과 마주했다. 여전히 파도를 가졌고 나를 요동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파도는 잔잔한 호수의 파도 같았고 나에겐 파도이지만 너무나 평화로웠다.
처음 느껴보는 움직임이었다. 늘 파도란 올라갈 때를 기다려 즐기고 내려올 때 위험을 감수하는 서핑을 해야하는 것으로 느꼈다. 하지만, 꼭 사랑을 그렇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
호수의 파도는 그 자체로 평화를 주고 편안함을 안긴다. 화려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래서 더 이쁜 모습으로 꾸미지 않고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매력을 가졌다. 마치 고급호텔에서도 줄 수 없는 편안함을 가진 집처럼, 새로운 것들을 더 들이지 않아도 안락한 내 방처럼.
이 호수는 그대로일때 가장 이뻤다. 그렇기에 나의 재미와 행복을 위한 공간이 되어 그 모습이 변하지 않도록 혹은 나의 입맛대로 꾸며져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었다. 파도를 이기며 그 자체를 즐기던 거친 서퍼는 그렇게 호수를 지키는 관리인이 되었다.
가끔은 무서울 때가 있다. 나는 순백을 지키기보다 세상의 검정색을 몸에 칠하려 노력하고 살았기에, 아름다운 호수가 나로 인해 어두움을 가질까 항상 경계한다. 호수를 관리하면서부터 조금 더 하얀색을 지키지 못한 것에 후회를 가지기 시작하고 이미 묻은 검정을 씻어보려 노력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호수는 기다릴 수 있기에 그리고 기다리고 있기에 나도 언젠가는 호수와 어울리는, 당당히 호수의 관리인이라 말할 수 있는 잔잔함을 가진 하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집이 좋은 이유는 내가 나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집이 아니라면 어떤 공간이라도 다른 누군가를 신경쓰며 살아야 하기에, 그래서 집은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공간이 된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어떤 짓을 해도, 나쁜 마음을 먹고 안좋은 생각을 해도, 본능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도 집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그런 나의 모습 또한 안아주기에, 그래서 집은 특별하다.
너가 나에겐 호수가 되어서 지키고 싶은 나의 평화로운 공간이 된다면, 나는 너의 집이 되어 있는 그대로의 그대 모습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길. 우리의 잔잔한 파도를 진정시킬 집이 될테니.
나는 사랑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도 의자에 앉아 새하얀 호수를 보며 진짜 사랑에 대해 또 한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