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항상 성급하고,
늘 섣불리 판단해 버리는
그런 사람이에요.
밥 먹고 공부하려고 하면
꼭 밥 먹을 때 말해요.
“공부 좀 해라”
그러면 왜 꼭 하려고 했던
공부도 하기 싫어질까요.
짜증이 밀려오고 화가 났죠.
남은 밥을 먹고 5분만 기다리면
책상 앞에 앉은 딸내미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왜 항상 그 5분을 못 참을까.
난 왜 그게 그렇게 화가 났을까.
어렸을 때, TV를 절대 못 보게 하셨어요.
심지어 리모컨을 들고 출근하신 적도 있죠.
왜 못 보게 하는 걸까.
TV를 보느라 공부를 못 할까 봐?
TV를 안 본다고 공부에 재능이 없는 내가
TV를 안 보는 시간에 공부를 할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못 한 거였고, 안 한 거였는데,
그래서 더 납득이 안 되고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러니 더 아등바등 보려고 기를 썼죠.
이런 사소한 것들이 켜켜이 30년 동안 쌓여서
이젠 반대만 하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어요.
‘이 사람들은 사사건건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전부 마음에 안 드는구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다 못마땅 하구나‘
기억이라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희석되고 왜곡된다고 하지만,
그때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상처로 남은 기억은 더더욱……
오래 참아온 감정들을 쏟아 낸다고 해서
그들은 내 말을 들어주거나 미안해하기는 커녕,
“지금까지 그걸 기억하고 있었냐” 라는 말로
결국 또 다른 상처를 주더라구요.
말해봤자 변하지 않을 사람들 탓만 하느라
더 이상 내 인생, 내 감정, 내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드네요.
어쩔 수 없잖아요.
드라마처럼 내가 다른 부모로 바꿀 수도 없고,
마법을 부려 그들의 성격을 바꿀 수도 없는 거니까.
내 성격을 바꾸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60년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을
내가 무슨 수로 바꿀 수 있을까.
체념이 아닌 포기가 답일 때도 있어요.
언젠가는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날이 오겠죠.
나를 낳아준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정확히는 그들이 그리운 것보다
엄마, 아빠라는 존재가 그리워질 거예요.
나르시시스트에, 성급한 그 사람 말고,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그 사람 말고,
비나 눈 오는 날 우산 들고 기다리는 부모,
내 밥 위에 생선 살 발라서 얹어주는 부모,
예쁘지 않아도 예쁘다 말해주는 부모,
자랑스럽지 않아도 자랑스러워해 주는 부모,
그런 부모가 그리울 거예요.
<그리움 -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 신해철>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 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리 아주 먼 길을 걸어왔네
조금은 여위어진
그대의 얼굴 모습
빗길을 속을 걸어가며
가슴 아팠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
그대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 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조금은 여위어진
그대의 얼굴 모습
빗길을 속을 걸어가며
가슴 아팠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
그대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 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