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그늘>
모든 게 정상으로 보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이 한 달 넘게 지속돼도, 너무 불안하고 초조해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도, 내가 아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 기분은 언제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고 행복할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이 아파 몸이 아프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다 결국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찾아왔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오면 그 처절한 두려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몸을 비스듬히 기울인 채 가슴을 움켜쥐고 미력한 신음 소리를 내다가 죽음의 두려움이 증폭될 때면 미력한 신음은 괴성이 됐다. 그렇게 울며 버티다 지쳐 쓰러졌다.
사라지지 않는 허공 속의 빈 걸음을 안고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 금방 나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몇 년이 지나도 나는 좋아지지 않았다. 약을 먹으니 예전처럼 공황발작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불안과 고독의 고통은 어둠의 한 가운데에 서 있던 나를 더 끔찍한 지옥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으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치료자를(정신과 의사) 밀어내며 상담 치료를 거부하고 약을 먹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병원 치료를 포기했다.
괜찮을 줄 알았다.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예전처럼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하며 삶의 이유를 찾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병원 문을 나서며 처방받은 약을 쓰레기통에 버릴 때 떠올렸던 이 생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예약된 진료 날짜에 병원에 오지 않자 치료자는 전화와 문자로 날 찾았다. 그러나 그것을 철저히 무시하고 꽁꽁 닫아 버린 마음의 문이 이젠 칼날이 되어 나를 두 쪽으로 가르고 있었다. 그래서 중단했던 병원 치료를 다시 시작했고, 감정 일기를 쓰며 요가를 배우고 명상을 했다.
여전히 불안과 고독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댔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나를 보며 지나온 기나긴 고통의 터널과 지금의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불안과 고독의 어둠이 죽음의 지옥으로 변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고통의 시간이 소소한 글이 됐다면, 이젠 그 고통에 맞서며 나를 돌보던 새로움이 또 하나의 희망이 됐다. 그렇게 45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나의 무의식 속에 숨어 언제나 울고 있는 ‘내면의 아이’를 부둥켜안고 위로를 건네며 이 책은 완성되어 갔다.
“이제는... 마음여행”이라는 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마지막 한 문장, 한 글자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쓰며 나의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힘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이 작으면서도 커다란 소망을 하얀 여백에 담아 드디어 세상 속으로 놓아 보낸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삶의 한 줄기 빛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커튼 사이로 아련한 햇살이 비친다.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하자 데일 듯한 눈부심에 얼굴을 찡그려 보지만 강렬한 아침 햇살을 피할 길이 없었다. 어제 마신 소주 반 병에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온몸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숙취에 끙끙대며 널브러져 있다 지갑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이불을 박차고 헐레벌떡 일어나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방바닥에 시체처럼 널려 있는 옷가지 밑에 양팔 가지런히 벌리고 엎어져 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아픈 몸을 살펴봤다. 양 무릎에 피멍 자국이 낭자하고 긁힌 상처가 선명하다. 왜 이리됐을까 싶어 지난밤의 기억을 떠올려 봤다. 그러나 겨우 생각나는 것은 택시 안에 자빠져 있거나, 어딘지 모를 곳에 주저앉아 울고 있거나, 한 발과 두 무릎으로 한 번 딛고 두 번 찧으며 온몸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뿐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아침도 평범한 하루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 몸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죽어라 일만 하다가 내 안의 에너지가 전부 고갈된 채, 소주 반 병에 정신을 잃은 후였다. 그날부터 모든 게 이상했다. 주량에 걸맞지 않게 인사불성이 된 것부터 숙취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어지러움이 있었다. 술로 인한 두통은 보통 하루가 지나면 없어진다. 그러나 그 어지러움은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증상도 특이했다. 마치 몸은 그대로인데 나만 허공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멍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며칠 지나면 없어질 거라 생각했고 두통약을 먹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온종일 허공에 떠 있는 몽롱함이 지속되자 회사 일에 집중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을 만큼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야겠는데 이런 어지러움은 처음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이렇게 난처한 상황에 처해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는데 이석증이 있으면 그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이비인후과에서 검사를 받았으나 이석증은 아니었다.
왜 그러는지 이유도 모르고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몇 주가 지난 뒤 누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직장 동료가 구토할 정도의 심한 어지러움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전정 신경염이 원인이었다며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진료 소견서를 받아 대학 병원에서 반나절 동안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일주일 뒤에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전정신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뇌의 문제인가 싶어 신경외과를 찾아갔으나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신경안정제에 대한 권유를 받았다.
방법을 찾을 수 없으니 기댈 곳은 인터넷뿐이었다. 관련 내용을 검색해 보니 순환기 계통, 즉 심장에 문제가 있어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어지러움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을 봤다. 그렇게 순환기 내과에 예약을 하고 심장 초음파와 24시간 홀터 검사를 받았다. 휴대용 심전도기를 허리에 차고 온갖 전선을 가슴에 붙인 채 이유 없이 심장이 뛰면 심전도기에 연결된 버튼을 누르라던 의사의 지시에 따라 참 열심히도 눌러 댔다. 그러나 종합적인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몸에는 이상이 없다는 말을 또다시 들었다.
"검사 결과를 보니 초음파도 정상이고 심전도에서도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아요. 이비인후과, 신경외과에서 이미 검진을 받았다고 했는데 순환기 계통에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시험 삼아 신경안정제를 먹어보면 어떨까요? 만약 어지러움이 없어지거나 약화된다면 심리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듣는 말이었다. 신경외과에서 한 번, 순환기 내과에서 또 한 번...
진료실 바닥만 쳐다보다 먹지 않겠다고 대답하고 병원을 나섰다.
이때 이미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을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일 수가 없기에 여러 진료과를 돌아다니며 다른 핑계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만성적인 불안을 가지고 살았다. 어릴 적부터 극도로 예민했기에 그날의 감정에 따라 기분이 좌우됐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큰 영향을 받으며 살았다.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하면 나를 비웃는 듯한 사람들의 표정과 그때의 장면이 한 폭의 그림이 된 채 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성향은 성인이 된 후 사회생활을 하며 더욱 심해졌다. 해보지 않은 일을 맡으면 심장이 요동치고 그 일이 엉망이 되는 공상이 시작됐다. 이렇게 시작된 생각의 굴레는 온종일 멈추지 않았고 결국 불안의 나락으로 나를 떨궜다.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시작되는 상상의 굴레는 나를 온종일 긴장하게 했다. 이로 인해 편히 쉴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오랜 불안과 누적된 불면으로 피로에 지쳐 한번 잠이 들면 긴 시간 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잠에 짓눌린 눈을 떴을 때, 안과 밖이 어둠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칠흑 같은 어둠은 죽음의 공포가 되어 나를 덮쳤다. 이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공포가 사라질 때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뛰는 일밖에 없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실을 외면할수록 가슴에 남은 커다란 흉터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죽을 것 같은 공황발작으로 나에게 왔다. 이렇게 이유를 모르는 몽롱한 어지러움과 상황을 가리지 않고 흘러내렸던 눈물, 항상 가슴속에 그득 차 있던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온 공황발작이 시작됐을 때가 돼서야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인정하지 못했고 받아들일 수 없던 불안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남들보다 예민하고 부정적인 성격 탓에 사소한 일에도 끊이지 않는 생각들을 떠올리고 쉽게 잊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 속에 갇혀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었고 어떻게도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의 늪에 빠져 일어나지 않는 일로 괴로워했다. 이 모든 것을 마음의 병이 아닌 유별난 성격 탓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이렇게 불안의 지옥 속에서 사는 것은 내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일이었다. 언제나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기에 온몸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호흡이 가빠 숨을 쉴 수가 없으며,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로 분노와 우울이 가라앉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근거 없는 불안에 떨며 한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불안의 늪에 빠진다는 것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 전부를 잃는 것이었다.
현대 사회의 병적 불안감은 스트레스와 혼란, 개인의 성격적 특이성이라는 그늘 속에 숨어 어지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간악한 위장의 천재는 자신의 정신 질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 상당한 심적 고통과 신체적 증상을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 탓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이렇게 치료 시기를 놓치면 비정상적인 불안의 크기가 심각하게 커진다. 그리고 불면, 우울, 공황 장애 등 다른 정신적, 신체적 증상과 결합하여 삶을 철저히 파괴한다. 만약 지금 불안의 지옥 속에 살고 있다면 가장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은 자신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라는 자기비판적 사고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은 지난 삶과 현재의 마음 상태를 살펴 그 상처를 보듬어 안고 불안을 끊어 내거나, 그럴 수 없다면 같이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의 지옥 속에 갇혀 평생을 고통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