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그늘>
아무리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응어리진 핏덩이를 가슴에 안고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더라도 아무도 보지 못하고 듣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어렵게 찾아갔을 병원에서조차 당신의 고통과 절망을 들여다보지 못할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 봤던 그런 기적 같은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 우울과 불안으로 더 이상 버틸 힘도 없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가시 돋친 말은 위로가 되기는커녕 온통 당신의 마음을 헤집어 놓을 것이다. 그들에게 당신은 의지가 약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사람일 뿐이며 자살할 용기는 있으면서 살아갈 의지가 없는 이해 못 할 사람이다.
그렇기에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당신의 말을 자르고 충고를 해댈 것이다. 그들에겐 상대방의 얼굴에 침을 튀기며 말을 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제일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험의 무지에서 오는 인간의 착각 속에 있다.
사람은 직접 겪지 않은 일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부정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자기 의견을 말할 때, 존재 가치가 입증되는 듯한 착각은 상대방과 공감할 수 없는 시간의 괴리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시간의 격차는 듣는 이의 가슴을 후비고 들어가 살아있는 심장을 반으로 가른다.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세상에 대한 단절과 고립이 되고 종래엔 분노와 우울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감정의 고립만큼 연약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년 전, 한적한 바닷가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신선한 회를 저렴한 가격에 양껏 먹을 수 있고 화창한 봄날이 되면 바람에 흩날리던 벚꽃 잎 아래, 아무도 없는 해안 도로를 달리며 어울리지 않던 호사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바닷가의 작은 항구에서 출항한 고깃배를 보며 머리 위로 날던 갈매기 떼와 지평선을 바라보던 일이 드물지 않던 일상이었다. 참으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곳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은 나에겐 견딜 수 없는 고독일 뿐이었다. 평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온전히 하루를 함께하는 회사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일하는 동안엔 외로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진 금요일 저녁, 돌아갈 곳이 없었던 나는 무리에서 버림받은 갈매기 신세가 되었다.
커다란 텅 빈 사택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밖을 나가도 마찬가지였다. 거센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듯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을 대신해 여기저기서 기계음만 윙윙대며 사람의 온기를 대신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곳에 홀로 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영혼까지 메말라갔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편도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서울로 향했다. 한 시간은 차를 몰고 두 시간은 버스를 타고 도착한 강남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주변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렇게 해야만 그 시간을 견딜 수가 있었다. 해가 떨어진 늦은 저녁, 가로등도 없는 안개 낀 국도를 달리며 사택으로 돌아오던 길에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이 길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둡고 짙은 안개에 가려 주변의 사물을 알아보기 힘든 것처럼 나 또한 걷히지 않는 안갯속에 갇혀 항상 단절된 삶을 사는 것이 숙명처럼 느껴졌었다. 그때의 엄청난 고립감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신의 상황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기대했다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정말 필요한 일은 엄청난 파고로 몰려오는 감정의 파도를 맞으며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타인의 위로와 따뜻함을 기대할 수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단순하면서도 매우 심오한 철학적인 질문에 접근해야 한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그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상황을 힘들어하는지, 감정의 변화가 있다면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일이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평생을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하나의 꿈일지도 모르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계속된 질문이 타인에게서 얻을 수 없는 위로와 공감을 자신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