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그늘>
의학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한 컷 화면 속의 그들은 끼니와 잠을 잊은 채 피 묻은 크록스를 신고 열 시간이 넘는 수술에 집중하고 있었다. 집도의를 중심으로 둥그런 원을 그리며 여러 사람이 하나의 몸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던 그때 주변을 서성이던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집도의는 그제서야 긴장의 끈을 놓고 주변을 서성이던 그에게 수술용 가운을 입혀주며 제작진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넸다.
“이 친구는 의대 실습생인데 오늘 수술을 참관하려고 왔어요. 계획했던 대로 잘 마무리됐고 마지막으로 정리하기 전에 심장의 힘을 느껴보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준비 중입니다. 혹시 알아요? 지금 이 경험이 또 한 명의 훌륭한 흉부외과 의사를 만드는 계기가 될지.”
집도의의 흐뭇하고 흡족한 미소 뒤로 긴장감이 역력했던 의대 실습생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용 가운을 마저 입고 의료용 장갑인 라텍스 글로브를 꼈다. 극도의 초긴장 상태로 집도의의 안내를 받아 아직 열려 있는 환자의 가슴 안에 손을 집어넣고 뛰고 있는 심장에 살며시 손을 댄 실습생의 얼굴에 묘한 충격이 서렸다. 수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처음과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환자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 가운과 라텍스 장갑을 벗던 실습생에게 제작진이 물었다.
“느낌이 어떠셨어요?”
거대한 충격을 받은 듯 실습생은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심장의 고동이 세차고 거센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직도 제 손에서 뛰고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 산다면 너무 불안해서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 실습생의 말처럼 나는 항상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살았다.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어도, 심지어는 어스름한 새벽 얼핏 잠에서 깼던 그때에도 심장은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잘못된 것인지를 몰랐다. 언제나 내 심장이 뛰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당연히 두근거림을 느끼며 사는 줄 알았다. 아둔한 것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것인지 꼬맹이 때부터 항상 뛰던 심장이라 가만히 있어도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게 정상인 줄 알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픈 거라고 이 바보 같은 주인님아!’라며 몸이 보내는 절박한 신호인지를 몰랐다.
날씨가 스산해지고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을날 아침,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늦잠을 잔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일이라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게 습관이 되어가던 참이었다. 병원에 몇 년째 다녀도 상담 시간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었다. 지난 시간을 상기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다시 들쑤셔야 하는 일이기에 잠시 잊고 있던 그때의 고통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돌아갈 땐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때문에 진료실에서의 나는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에 짓눌려 떨어지지 않는 입을 움직여 첫 한마디를 건네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날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조심스레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데 심장이 예전처럼 두근거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언제부터 심장이 뛰지 않았을까?
꾸준히 먹고 있는 약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미친듯이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엄청난 변화였다.
내가 가진 불안은 아무런 이유가 없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갑자기 미친듯이 심장이 뛰는 것은 다반사이고,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그리며, 누구도 말한 적 없는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나를 자책한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일이 생기면 얼마든지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면서도 수면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고 백 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몸에서 일어나는 이런 반응을 나는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불안하다는 감정은 그 불안을 떨쳐 내기 위한 과한 역반응을 불러왔다. 예상할 수 없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극단적인 완벽주의가 생겼고 모든 행동의 기준을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두며 내 감정에 집중하지 않았다. 이렇듯 내가 가진 불안은 휴식의 기본 조건인 잘 먹고 잘 자는 것을 방해하고 원인 모를 조급함에 한순간도 편안한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기에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의 한계까지 내몰리면 결국 죽음의 공포가 찾아오는 공황발작이 왔다.
이 불안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의 몸 안에서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때 선천적으로 높은 불안을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내가 인지하지 못한 어떤 시기에 그 불안을 증폭시킨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지금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현재의 삶에 너무 큰 고통을 주는 불안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평생 약을 먹고 병원에 다닐 수는 없기에 이 또한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가진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이 불안에 갇혀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아야 한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왜 이 지옥 속에 갇혀 벗어나지를 못하는가?’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함과 절망감에 눈물이 터졌다. 그리고 그치지 않는 눈물은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를 휘감은 이 저급한 불안은 내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애를 써봤지만 변하는 게 없었다.
지금…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연 내가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