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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안에 숨어 있을뿐

<고독의 그늘>

by 꽃비

토요일엔 늦잠이다.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깨우기 위해 반복되는 알람도 없고 일어나기 싫어 뭉그적거릴 필요도 없다. 얼핏 잠에서 깨더라도 따뜻한 이불 속에서 늘어져 있으면 될 일이다. 늘어지게 자다가 고대로 누운 채로 텔레비전을 켠다. 토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고 즐겨보던 여행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일은 놓칠 수 없는 소소한 삶의 낙이었다.


그렇게 이불 속에 누워 여행자의 안내에 따라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면 가슴 속에서 뜨거운 열정이 꿈틀거리며 용솟음치곤 했다. 이곳과 다른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참 궁금했다. 그러나 솟구치는 마음속의 욕망과는 달리 현실의 벽은 언제나 두껍고 단단했다.


몇 년에 한 번이라도 세상 구경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가본 적 없는 드넓은 세상을 보기보다 이유 모를 절박함에 좁아터진 내 세상만을 살아왔다. 이렇게 하루를 살기도 버거울 때 풀리지 않는 미궁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에 치여 오늘만을 살았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내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빨랐다. 허덕거리며 지나버린 시간이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모여 세월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렇게 나이만 먹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흔을 앞둔 삼십 대 후반, 처음으로 해외 배낭여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먹고, 어디서 자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계획할 수 없는 것을 계획하려 했고, 예측할 수 없는 전부를 예측하려 했다. 나를 휘감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일상을 압도하는 혼란이 되어 여행에 대한 야릇한 흥분감마저 없애 버리기에 충분했다.


어느덧 다가온 출발 날짜에 이티켓과 여권을 챙기고 배낭을 멨다.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내 가슴도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긴장감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서야 찾아온 여행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내가 타야 할 비행기 한구석에 나를 밀어 넣었다.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부여잡고 파란 창공을 날아올라 엉덩이 밑의 땅과 바다를 건너 낯선 이국땅에 도착했다.


그때 내가 보았던 붉고 뜨겁던 여명의 아침은 또 다른 나에 대한 발견이었고,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하루 수 만보를 걸으며 그저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그렇게 멍하니 넋 놓고 쳐다보다 왠지 모를 울컥거림에 눈물지었다. 아마도 그때의 눈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아름다움과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원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 여행을 다녀오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내가 그렇게 감동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역사책을 읽고 건축과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에는 그저 오래된 흔적에 불과했던 고허가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내 기억과 가슴속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찰나에 흩어져버릴 기억이 아닌 내가 살아온 다른 삶의 흔적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여행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피렌체에서 시작된 활자 속의 여행은 프랑스를 건너 이스탄불을 여행했고, 영원히 갈 수 없을 것 같던 이라크 땅을 밟았다.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하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들을 잊은 채, 앞에 놓인 책과 사진, 지도에 몰입하는 순간은 함께하는 행복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늘 혼자인 삶을 아프지 않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예전의 나처럼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하루를 살기에도 버거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내 아버지와 큰누이가 그랬다. 제주도를 한 번도 못 가본 아버지는 칠순 여행에 들떠 가고 싶은 곳을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가족 여행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경상도에 있는 큰누이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조카가 아프다 보니 항상 부모의 손길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큰누이는 조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이렇게 아버지와 큰누이처럼 버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드넓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의 작은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공부를 하고 사진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글을 썼다.


혼자 있으면 시작되는 고독에 대한 고통은 집중을 넘어서는 몰입을 선물했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많은 글을 쓸 수가 있었고 그렇게 게시물이 쌓이고 조회 수가 올라가자 블로그에 광고가 들어왔다. 돈을 목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다. 그래서 광고와는 상관없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내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사람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광고 수입을 위한 의도적인 부정 트래픽이 감지됐다는 경고 메일을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광고 수입은 푼돈에 불과했고 없는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크게 맘 쓰지 않고 넘기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공개적으로 매도당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힘들었다. 이렇게까지 기분 상할 일은 아닌 듯싶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왜 이런지 참 의아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부정의 빨간색으로 나를 쏘아보는 신호등을 마주하며 ‘내가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일로 돈을 벌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럴까? 그 순간 한겨울 매서운 찬바람이 살갗을 뚫고 들어오듯 문득 뇌리를 파고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정말 혼자인 삶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것일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감당하지 못하는 시간의 고통을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겼을 뿐, 나는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진 채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힘든 진짜 이유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나를 집어삼키고도 남을 무의식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에, 결국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잠시 잊혔던 고독의 고통은 다시 되살아 날 것이고, 여전히 허우적거리며 버둥거리다 결국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부정의 빨간빛이 녹색으로 변했을 때 어딘가로 발걸음을 뗐다. 그리고 은은히 퍼지는 녹색의 불빛 아래,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 있음을 알았다. 깊은 내면에 숨어 모습을 감췄던 처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단지 어딘가에 숨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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