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그늘>
텅 빈 하루의 24시간, 아침에 눈을 뜨면 주섬주섬 일어나 눈꺼풀에 가득 내려앉은 잠을 깨우고 머리를 감은 뒤 옷을 입고 출근을 한다. 이 모든 행동은 알람이 울린 후 최단 시간에 일어나는 일로 출근 시간은 일분일초와의 사투다. 새로울 게 없기에 기대할 것도 없는 하루의 반복이다. 하지만 지하철역까지 걷는 짧은 시간 동안 오늘만큼은 기분 좋은 일이 있기를 내심 기대해본다.
첫 밥벌이는 지금 하던 일이 아니었다. 취준생 시절 가고 싶던 회사는 계속 떨어졌고 결국 먹고사는 것에 조급해져 최종 합격한 곳을 선택했다. 원하던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입사 후에도 갈팡질팡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결국 하고 싶던 일을 찾아 전직을 했다. 경력을 살린 이직이 아니라 업종을 바꾸는 전직이었기에 몇 년 동안은 정말 죽을 것같이 힘들었다.
사람 인생 참 얄궂게도 막상 그렇게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되자 처음의 열정은 모조리 사라졌다. 그리고 상하 수직적이며 불합리한 직장 생활로 돌아와 있었다. 거기다 업무 강도는 얼마나 센지 일에 파묻혀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하는 일만 달라졌을 뿐이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청춘 때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마저 사치라고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데 또다시 길을 잃고 헤매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실로 어이없는 웃음만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망가진 몸 이외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친구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졌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지도 않았다. 그 덕에 시원한 맥주 한잔 같이 마실 사람이 없었고, 또래 젊은이들처럼 산뜻한 한강 바람에 도시락 까먹고 파란 하늘 보다 낮잠 자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긴 연휴가 시작되면 도대체 혼자 뭘 할 수 있을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기에 홀로 있는 고독감은 배가되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쉬는 날이 무척 힘들었다.
휴일의 아침이 되면 늦잠에 대한 기쁨보다 종일 홀로 견뎌야 하는 고독의 시작이란 게 더 가슴 아팠다.
처음엔 나름의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혼자 있더라도 그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산에 가는 걸 좋아했기에 긴 연휴가 시작되면 무거운 배낭 짊어지고 며칠씩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그달의 주말을 넘기고 일 년이 지나며 수년의 시간을 같은 방법으로 견디고 있을 때, 외로움의 버팀목이라 믿었던 그 일이 참을 수 없는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몸부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며 했던 행동들이 외로움의 아픔을 잊기 위해 자신에게 가했던 다른 형태의 고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몇 시간의 산행과 맨몸 운동에 불과했다.
그러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한 곳에 쏟아붓지 않으면 나를 괴롭히던 외로움과 공허함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써야만 들 수 있는 엄청난 무게로 운동을 했다. 그렇게 한 곳에서 시작된 육체의 고통이 전신으로 퍼지는 순간, 나를 괴롭히던 불안과 고독은 드디어 자기 생각을 멈추고 평온함에 드는 것을 허락했다. 때론 사람의 마음은 홀로 있는 고독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고독이 차고 넘치면 영혼이 파괴된다. 혼자 있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지만, 시간이 갈수록 배가 되는 아픔은 그에 상응하는 물리적 고통으로만 대체될 수 있기에 정신과 육체가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해야만 덜 아프게 그날 하루를 보낼 수가 있기에 다른 형태의 자해를 가하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치료자는(정신과 의사) 이런 고통의 기반에 내가 모르는 깊은 우울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내가 겪은 가난으로 인한 처절한 수치심과 따돌림의 경험이 그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심하게 말을 더듬어 화장실이 급하다는 얘기를 못 해 바지에 실례하고 말았을 때, 그런 나를 뒤 따라오며 놀려대던 친구들과 계속 울기만 하던 기억들이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더운 여름날, 평상에서 점심을 먹던 옆집 사람을 피해 주린 배를 쥐어 잡고 셋집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던 잊히지 않는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굶주려 있고 홀로 있는 시간을 가장 힘들어하며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독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해왔다.
쉬는 날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당신 주변엔 의외로 휴일이 고통인 사람들이 있다.
기혼자들이 공통으로 얘기하는 불만이 있다. 바로 가족 간의 마찰과 자신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는 말을 덧붙인다. 어쩌면 이 말에는 모든 걸 다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양면성이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선택이라는 말에는 원하는 걸 골라 가질 기회가 있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원하는 것을 전부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사람 사이에 섞여 서로의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풀어가는 것도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것이 매우 어렵고 힘들지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책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일과 놀이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건강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 일, 놀이, 사랑의 조화가 한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인데, 이 세 가지 조화는 모두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기반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고립과 고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삶의 가장 큰 고통이 된다.
이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