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혐오를 딛고, 다시 나를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잔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하루가 조금만 어긋나도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이 문장이 튀어나왔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지.”
이 말은 이상하게도 반박이 되지 않았다.
너무 오래,
너무 자주,
나에게 들려준 말이었기 때문이다.
실패했을 때만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날에도
그 문장은 습관처럼 나를 깎아내렸다.
자기혐오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소리치지 않는다.
대신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비교하는 순간,
숫자를 보는 순간,
아싸가 되는 순간,
남들이 잘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 앞에서
나는 나를 재판대에 세웠다.
판사는 나였고,
검사도 나였고,
판결은 늘 같았다.
유죄.
나는 나를 몰아붙이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 믿었다.
스스로에게 가혹해지면
언젠가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자기혐오는 나를 움직이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완벽하게 멈추게 했다.
“어차피 잘 못할 텐데.”
“또 실망할 텐데.”
“괜히 시작했다가 더 초라해질 텐데.”
이 말들이 쌓일수록
나는 시작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하지 않으면, 적어도 실패할 일은 없으니까.
이런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 없이 살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고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언제나 쪼르르 달려 나가던 나였다.
그러다 불현듯 내게도 짙은 불행이라는 것이 찾아왔다.
우울과 무기력은 언제나 있었지만 40대 초반에 괴로움을 처음 만났다.
처음이라 놀라고 감당을 못했다.매일 나를 덮치며 내목을 졸랐다.
이렇게는 죽을것 만 같았다.
끔찍했다.
살려달라 외치고 싶었지만 소리 지를수 없었다.
혼자였거든.
외로움은 덤이더라.
끔찍함이 계속 되면 갑자기 소망이 생긴다.
못난사람으로 취급하는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자기비하에 무뎌졌던 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비하를 버리고 싶은 소망이 싹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불행이 짙어질수록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다.
다른 사람말고 나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아니 간절해 졌다.
내가 정말 싫어했던 건
‘못난 나’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멈춰 있는 상태였다는 걸.
그리고 삐뚤어진 생각 이였다는 걸.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나를 사랑하려 하지 않았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도 않았다.
대신 아주 현실적인 선택 하나를 했다.
“못해도 되는 행동을 허락하자.”
거실을 맴돌았어. 하염없이 서성였지.
한시간이 지나고 두시간이 지나고
어떤날은 6시간을 서성인적이 있었어.
지금생각해보니 그건 불안 이였어.
안하던걸 할려니 나도 모르게 불안이 찾아 온거야.
내가 몰랐던 나 자신도 알게되었어.
난 불안할때 끈임없이 서성인다는 거야.
불안을 한움큼 끌어않고서는 나는 중얼 거리기 시작했어.
"나는 내가 못났다는 생각을 하고있구나"
"생각을 하고 있구나"
거짓말 좀 보태서 골천번도 더 되뇌였어.
서성이는 내내.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다 책상으로 가서 빈노트를 펼쳤어.
펜을 들고 맨위 여백에 날짜를 적었지.
00년, 0월 0일 0요일
펜은 멈췄어.
더이상 쓰질 못했어.
그리고 볼펜을 입에 물고 눈동자를 치켜들고 '내가 잘하는게 뭐지?'
생각이 안났어.
나의 장점은?
...
음~~~~ !
내가 자주 듣던 칭찬이 뭐였지?
...
아!맞다
나는 각선미가 이쁘다.
손이 이쁘다.
내가 처음으로 펜을 들고 쓴 두줄이였어.
그리고 노트 제일 겉표지에 적었지.
저녁일기.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건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단 두줄의 스스로 자신에게 하는 칭찬이였어.
하루에 한 줄.
엉망이어도 상관없는 기록.
잘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의 기준은 단 하나였다.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이상하게도
그 작은 행동 앞에서는 잠깐이였지만
“나 왜 이렇게 못났지”라는 말이 힘을 잃었다.
대신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아~!! 나는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어.하지만
그날이후 나는 습관처럼 오래도록 거실에서 매일 서성이였어.
그리고 서성이는 시간만큼 '생각을 하고 있다'고 중얼거렸어.
"나는 못났다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 한 문장이
나를 다시 오늘로 데려왔어.
어느날 문득,
물마시다 말고,
어! 나 이제 서성이지 않네.
어! 못났다는 생각도 안하네.
우아~!! 언제 부터 안한거야.
난 의식하지도 못했다.
내가 변했다는것을.
내생각이.
내 행동이 바뀌었다는 것을.
자기인정은 감정이 아니라는 걸.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자신감도 아니라는 걸.
그건
반복을 통해 쌓이는 신뢰였다.
어제도 했고,
오늘도 했고,
내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감각.
그리고 매일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였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늦고, 서툴고, 자주 흔들린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를 모욕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해본다.
“지금은 배우는 중이야.”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 하나.
자기혐오를 이기는 방법은
나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나를 계속 현장에 세우는 것이었다.
오늘도 거창할 필요는 없다.
형편없어 보여도 괜찮다.
중요한 건
다시 한 번 움직이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오늘, 자기혐오 대신
어떤 작은 행동 하나를 선택해볼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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