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등불
어머니와 고향은 같은 뜻이다. 평소에 잊고 있다가는 살아가기에 힘들고 어려울 때면 우리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고향을 생각하듯이.
내가 생각하기로 우리 7형제 중 어머니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 사람은 형, 큰 누나, 나 이렇게 세 사람이다. 나는 몸과 마음이 약해서였고, 큰 누나는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서였고, 형은 군대에 가서 월남에 가던 것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는 어머니와 형의 이이야기다. 형이 군대에 가야 할 무렵, 형 또래의 친구들이 모두 육군으로 가는데 형과 형의 친구 한 분과 두 명만 해병대에 그것도 추운 겨울에 갔다. 그날부터 어머니의 걱정은 시작되었다. 추운 겨울에 그 힘들다는 해병대에 가니 어린 것이 살아서 돌아오기나 하겠냐고, 군대에 가기도 전에 어머니는 걱정으로 아들을 위로한답시고 떡도 하고 여러 가지 세심하게 보살폈다. 그런 후 형은 어머니와 동네 사람들의 눈물 젖은 손을 뒤로 하고 배를 타고 떠나갔다. 형이 입고 간 옷이 와서 집안은 눈물바다가 되었지만 그 후에 형의 편지는 자주 왔고 답장은 거의 내손으로 썼다. 그렇게 세월 속에 어머니의 눈물의 량이 줄어가고 있을 즈음에 새로운 소식이 왔다. 형이 월남에 간 것이다. 어머니의 눈물은 한숨으로 변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와사등을 사가지고 오셔서 그것을 매일 해질 무렵이 되면 호야에 기름을 넣고, 불을 켜서 유리로 된 뚜껑을 덮은 와사등을 큰 방 앞 처마 끝에 매달기 시작했다. 이름 하여 불공을 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행여 불이 꺼지면 무슨 일이라도 나는 듯이, 조심스럽게 정성스럽게 어머니는 그 일을 계속하셨다. 나와 동생들은 어머니가 시키지 않는데도 어머니처럼 자연스럽게 그 일을 똑같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사이 불이 꺼진 것을 발견되었다. 놀란 어머니는 우리의 정성 없음을 나무라하셨지만 그것은 자신의 정성이 부족해서임을 자책하는 것만 같았다. 그 일 후 어머니는 다시금 그 일에 직접 정성을 다하셨다.
그리하여 형은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오게 되었다. 돈 벌러 월남 갔다 하더니만 몸만 달랑 온 형이라도 좋았다. 월남에 있는 동안 형은 매일 일기를 썼었고, 형이 가져온 일기장을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소설 읽는 느낌으로 오래오래 읽었다. 거기에는 매일매일 동료들의 죽음과 귀대하기까지의 남은 일 수,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담겨있었지만 나의 눈을 끈 것은 형이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때로는 동료들만 죽은 대목들이었다. 그 때 나는 어머니의 불공에 대해 생각했다. 등불이 꺼진 날은 아마 형이 죽음을 가까스로 넘기는 바로 그 날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형이 살아서 이렇게 살아오신 것은 어머니의 간절한 그 많은 날의 불공을 들이던 마음, 정성탓이라고 믿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식의 무사함만을 비는 자기희생의 사랑을 베푼다. 어머니의 그 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은 나는 그 어머니에게 남은 생을 보다 마음 편하게 지내시게 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형과 큰 누나도 이제는 어머니를 용서하고 좀 더 편안하게 살기를 빕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 * 월남전에 다녀온 형과 어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쓴 이후 한 참 후인 봄에 어머니는 92세에 돌아가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