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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우 Feb 25. 2023

그 겨울의 아침

수필

그 겨울의 아침

                                                   

모두 잠든 한밤중 아버지는 새벽을 당겨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통탕통탕 탕탕탕 통탕통탕........

바다에서 채취한 윤기있는 검은색 김은 도마위에서 큰 칼로 잘게잘게 잘라지며 새벽을 깨우고 있습니다

작아져 가는 소리 따라 새벽이 멀어져 갈 때 어머니의 깨우는 소리에

고만고만 형제 다섯, 작은 솜이불 잡아당기며 몸을 움추립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자고 싶어.’  여기저기서 들리는 꿀잠이 넘치는 소리.

‘이놈들아 빨리 일어나 차려 놓은 밥 먹고 가목(바닷가 개울)으로 오너라.’  

엄마의 걱정스런 목소리.

느릿느릿 꼬무락꼬무락 눈 비비고 일어나 구멍 뚫린 양말 신고 목도리 감고

나는 이불 개고, 큰누나는 밥상 챙기고, 동생은 방 청소, 작은 동생은 마루청소, 작은 누나는 걸레를 빨고, 우리는 제각기 가방을 챙깁니다. 어젯밤에 해 놓은 숙제도 가져가자.


제 몫의 짐을 메고 이고 지고 줄서서 가목으로 간다. 바닷가 방품림 숲길에 이르면 나는 멈춰 서서 귀 기울인다. 후박나무 잎 사이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쏴솨솨 힝이잉 쐬쇠쇠 씨이잉... ’

동네 사람들이 바닷가 자갈밭을 왔다 갔다 하는 ‘짝 짝 짝짝짝짝 짜악 짝’ 발자욱 소리,

바다로 이어지는 개울에 ‘졸졸졸 쫄졸쫄’ 물 흐르는 소리,

동네 아저씨 김통에 개울물 퍼담는 소리, ‘툼벙 툼벙 툼벙....’

지난 하루 있었던 얘기, 미주알 고주알 두런두런...

개울과 바다가 만나는 빨래터에서 김을 뜨고 있다. 김틀을 중앙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 짝을 지어 마주보며 서서, 어머니와 아버지, 장숙이 어머니와 아버지, 금순이 오빠와 어머니,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일제히 우리를 향하는 눈길 사이로, 왜 그렇게 꾸물대느냐는 아버지의 호통소리, 우리는 동작 빠르게 제각기 자기자리로 간다.


참을성 많은 동생은 어머니와 교대하여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가 밤새 썰은 생김과 물을 통속에서 적당히 썩은 김을 발장(A4 한장만한 크기의 도구)에 떠 주면 동생은 그것을 한 짱씩 옆에 물만 빠지라고 세워두면, 나는 그 장수가 스무 개쯤 모이면 다시 벽이 있는 땅 바닥에 세우기도 하며, 지게와 바작에 담아 지고 가서, 그것을 말리는 장소인 자갈밭 고랑에 가지런히 세워둔다. 어머니랑 두 누나와 작은 동생은 한 장씩 자갈고랑에 비스듬히 널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꼬챙이로 고정시키기를 계속한다. 이 쪽 옆은 금순이네 자리, 저쪽 옆에는 건희네 자리, 저 멀리에 있는 장숙이네는 다 끝내고 가는데.

그 때쯤, 저 멀리 수평선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 씩 커져 가는 해. 나도 조금씩 커져 간다. 아침 해님 속에 갇혀서 빨갛게 빨갛게.... 기어이 내가 해가 되고 만다.

저만치서 빨리 안하고 뭐하냐고 재촉하는 어머니, 잠시 허리를 펴고 해 돋는 바다를 본다.

긴 새벽의 소리들은 이제 해님 속에 묻혀 져 가고 조그마한 파도만이 저 혼자 무심히 밀려왔다 밀려간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지게 지고 왔다 갔다 열두 번쯤, 동생은 손도 시럽고 발도 시럽다고 나하고 바꾸자 한다. 동생이 불을 쬐는 동안 난 동생보다 못한다고 아버지에게 혼난다. 동네 아주머니는 내 편이다. ‘아제네 아이들 같은 애들이 우리 동네 어디 흔한가요.’ 기회를 놓칠세라  ‘아부지 이제 우리 학교 가면 안돼요?’ 아버지의 대답은 ‘종치면 가’

그 때 쯤 멀리서 선생님 모임을 알리는 학교 종소리, ‘땡땡땡’

얼굴에 미소를 띄우시는 아버지, ‘이제 학교 가라, 지금 가면 시간 꼭 맞을 거다.’

‘누나야, 형님아, 우리 해방이다. 내 가방, 늦을라, 달리자’

멀어져 가는 우리들 보고 어머니 하는 말 ,‘학교 끝나면 놀지 말고 빨리 와서 마른 김 걷어라. 찢어 지지 않게 조심하고.’

그 아침 해는 저 만치에서 부러운 듯 덜컹거리는 책보자기를 메고 뛰는 우리 등 뒤에서 웃고 있었다.


내가 그린 그 때의 그 바닷가


< *은행 재직시, 은행 고객과 직원들을 위한 소식지인 월간‘은행소식’에 게재된 글로서 생애 최초로 원고료를 받은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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