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뜯지 않은 여름은 보랏빛 포도알처럼 유리병 속에서 반짝인다.
7월이란 달력 위의 선명한 숫자는 뜨거운 한낮의 공기를 불어넣는 풀무 같다. 마치 선물 상자 위에 찢지 않은 봉인처럼, 이 달은 아직도 완전히 열리지 않은 상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여름의 포장을 뜯기 전, 그 속에는 기대의 물결이 은밀히 고여 있다.
사람들은 한여름의 맹렬한 태양을 기다리며 동시에 그 무게를 두려워한다. 계절의 이중성은 마치 우리가 손에 쥔 냉장 과일과 같아, 시원함과 단맛을 기대하지만, 너무 빨리 썩어버릴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아직 뜯지 않은 여름은
보랏빛 포도알처럼
유리병 속에서 반짝인다.
손을 뻗어 닿을 듯 말 듯
달콤한 신맛의 꿈.
햇살은 도시의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려, 빌딩 사이로 뾰족하게 쪼개져 길 위에 그림자를 그린다. 사람들은 그림자 속을 재빨리 지나간다. 각자의 얼굴에는 미래의 휴가 계획이 투영된 듯하다. 한 직장인은 점심시간에 스마트폰으로 휴양지 사진을 넘기며 빙그레 웃는다. 그가 키보드 위에 떨어진 햇살을 어루만지자, 그 손가락 끝에 이미 먼 바다의 파도 소리가 스쳤다.
그러나 그가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자, 그 꿈은 깨지기 쉬운 거품처럼 사라졌다. 현대인은 여름을 소비 가능한 상품으로 바꾸어, ‘미개봉’ 상태의 기대감을 쇼핑 카트에 가득 담는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달콤한 휴식 그 자체일까, 아니면 그 달콤함에 대한 기대일까?
“이번 여름에는 꼭 제주도 바다를 보러 가야지.” 커피숍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이미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계획표는 초등학생의 여름방학 숙제 목록보다 더 길다. 하지만 시간은 여름밤의 반딧불처럼 자취를 감춘다. 우리는 계절의 선물을 열지도 못한 채 서랍 깊숙이 넣어버린다. 문득 생각나면 그 서랍은 이미 먼지로 덮여 있다.
어릴 적 여름은 정말 뜯지 않은 선물이었다. 나는 할머니 집 마당에 놓인 거대한 수박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수박은 땅 위에 둥그렇게 놓여 있었고, 그 표면에는 아직 이슬이 맺혀 있었다. 할머니는 “아직 때가 아니란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주름진 손은 수박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 푸른 줄무늬 아래에는 달콤한 빨간 과육이 숨겨져 있을 거라 상상했다. 그 기대감은 나를 몇 주간 설레게 했다. 수박을 가를 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오히려 그 기다림의 달콤함을 더 애틋하게 느꼈다.
뜯지 않은 순간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 한 번 뜯어버리면, 그 가능성은 하나의 현실로 굳어져 버린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수박 앞의 어린아이가 그리워진다. 그 순수한 기다림은 이제 찾기 어렵다.
어느 무더운 오후, 나는 우연히 서랍 깊숙이 묻힌 엽서 한 장을 발견했다. 몇 년 전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봉투는 아직 뜯지 않은 상태였다.
그 속에는 아마도 친구의 따뜻한 인사와 함께한 여행 초대가 담겨 있을 것이다. 나는 봉투를 들고 잠시 망설였다. 뜯지 않으면 그 내용은 영원히 미지의 상태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뜯지 않으면 그 속의 따뜻함도 영원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 모순은 마치 우리가 여름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 우리는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그 순간을 누리려 하지만, 동시에 그 너무 빠른 소멸을 두려워한다.
여름은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아스팔트 위로 흩어져
반짝이는 수은 방울이 되었다.
발밑에서 사라지기 전에
나는 그 빛을 잡으려 애쓴다.
도시의 밤은 여전히 무더위에 잠기지 않는다. 고층 건물의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내는 뜨거운 바람은 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땀을 더해준다. 나는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포장지를 뜯는 순간, 차가운 단맛이 혀끝에 퍼져나간다.
이 순간의 만족감은 간단하고 순수하다.
계절의 의미는 거창한 계획이나 먼 여행에 있는 것이 아니다. 뜯지 않은 여름의 기대는 아름답지만, 뜯는 행위 자체야말로 계절이 주는 선물을 진정으로 누리는 방법이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공기에는 갓 내린 비의 냄새가 스멀스멀 퍼져나간다. 곧 쏟아질 소나기가 오늘의 무더위를 씻어줄 것이다. 나는 창가에 서서 여름밤을 내려다본다. 아직 뜯지 않은 선물은 아름답다. 하지만 뜯지 않으면 우리는 그 속의 경이로움을 영원히 알 수 없다.
잃어버린 시간을 후회하기 전에, 오늘의 선물 포장을 뜯어보자. 뜨거운 햇살 아래, 우리는 모두 계절의 수취인이자, 동시에 그 안에 담긴 무한한 순간의 보관인이다.
시간은 결코 정지하지 않지만,
뜯는 행위는 잠시 멈춤을 의미한다.
그 순간,
우리는 여름의 핵심에 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