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밀란, 함흥 제혜 병원을 설립하고 헌신한 여선교사
20년간 환자 돌보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순교
케이트 맥밀란 선교사(맹미란, 1868~1922)는 20년간 함흥 제혜 병원을 운영하며 가난하고 어려운 환자를 돌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어 54세에 순직하였다.
그녀는 볼티모어 여자 의대를 졸업하고 코넬 의대 3년 수련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1901년 캐나다 장로회 소속으로 한국에 왔다.
그녀는 처음에는 원산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1902년에는 성진에서 성진 제동 병원 설립하는 그리어슨 선교사를 도왔다. 당시 제동 병원은 함경도 일대에서 유일하게 수술이 가능하였기에 많은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후 1903년 함흥으로 이동하여 방 2칸의 한옥 한 채를 마련하여 진료를 시작했다. 원산에서 영어와 의술을 익힌 한국인 2명을 함흥으로 초청하여 함께 환자를 돌보았다. 이것이 함흥 제혜 병원의 시작이다. 10년 후 1913년 5월 한옥 방식과 양식이 혼합된 3층 건물의 제혜 병원을 완공하였다.
그녀는 여성과 아동 대상으로 전도 활동을 병행하였다. 여성은 사회 진출을 꾀하는 시기였기에 여성 선교사의 활동이 필요한 시기였기에 순회전도, 여성 성경공부, 야간 성경공부, 여학교 수업 등 복음전도 활동까지 병행하였다. 당시 함흥 선교부에는 목사 맥레와 여의사 맥밀란의 헌신으로 의료와 복음 전도 간에 조화를 이루고 성장한 사례가 되었다.
<나의 낮 시간은 어디로 갔는지 밤이 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녹초가 됩니다. 11월, 12월은 지방을 다니느라 다 보냈습니다. 우리가 아직 시작도 못 한 일들을 생각하면 마치 높은 언덕을 힘들게 올라가는 것처럼 피곤을 느낍니다.>라고 그의 심정이 남아있다.
1922년 2월 25일, 그녀는 환자를 돌보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영생 여학교 기숙사에서 디프테리아에 걸린 학생들 7명을 치료하던 중 자신도 감염된 것이다. 자신의 전 재산을 선교부에 기부하고 하나님 나라로 떠났다.
그 후 함흥 제혜 병원은 1921년 내한한 플로렌스 머레이 여의사가 그녀의 뒤를 이어 사역하였다. 머레이는 20년간 결혼하지 않고 많은 환자를 돌보며 헌신하였고, 1942년 일제의 압력으로 한국을 떠났다. 그녀가 기록한 책 < 내가 사랑한 조선>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아쉽게도 함흥 제혜 병원은 머레이가 떠난 후 문을 닫고 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