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즈, 평양 제중병원 설립하고 만 여명 환자 돌봄
한국인 의사 양성하고 해부학 교재를 집필
제임스 헌터 웰즈 선교사(우월시, 1866~1938)는 평양에 파견되어 20년간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평양 제중병원을 설립하였고, 한국인 의사 양성을 위해 평양 제중원 부속학교를 운영하였다.
그는 1895년 6월 북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했다. 서울 도착 시 콜레라가 유행하여 방역 사업에 협력한 후, 그해 10월 평양 선교부로 배속되었다.
평양에서 먼저 모펫 선교사의 집에서 진료를 시작했으며, 그해 여름 캐나다인 매켄지 선교사가 소래에서 순교함에 따라 언더우드와 함께 방문하여 장례 예배를 치렀다.
1896년 평양에 진료소를 개설하고 환자를 돌보았는데 이곳이 평양 제중원의 시작이다. 1904년 안식년으로 미국 가서 후원금을 모금하여 1905년 병원 건물이 신축되었다. 병원은 후원자의 이름을 따서 <캐롤라인 래드 기념병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후 여의사 피쉬(1897~1899, 모펫과 결혼) 및 샤록스(1900~01), 화이팅(1903~06) 의사가 합류하였고, 웰즈는 그들과 함께 10년간 만 명 이상의 환자를 돌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한국인 의사를 양성하는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1905년 병원 신축 후 3년제 제중원 부속 의학교를 설립하여 학생을 가르쳤다. 그 결과 1910년에 국가가 인정하는 8명의 의사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의학 교재를 번역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여서, 해부학 교재를 완성하여 세브란스 의대에서 활용되도록 하였다.
웰즈는 평양 제중병원에서 20년간 병원 원장직을 수행하면서 헌신하다가, 1915년 은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 가서는 오래곤 주 포틀랜드에서 노년을 보내다가 1938년 7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평양 제중병원은 웰즈의 은퇴 후 기홀병원과 통합이 추진되었다. 당시 평양에는 1897년 설립된 기홀병원(북 감리회 선교사 제임스 홀의 순교를 기념하여 부인 로제타 홀이 설립, 포웰 선교사가 초대 원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두 병원은 좋은 협력 관계였기에 1920년 통합되고 홀기념 연합병원으로 명명되었다.
그 후 1923년 1월 평양 부인 병원(로제타 홀이 설립하였고, 당시 여의사 커틀러가 원장)까지 통합하여 평양 연합기독병원이 되고, 초대 원장으로는 앤더슨이 취임하였다. 1940년 11월 감리회 선교사들의 철수로 앤더슨 원장이 귀국하고, 1941년 1월 한국인 김명선( 세브란스 병원 의사)이 원장으로 취임하여 운영하다가, 1950년 공산당 체제하에 문을 닫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