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쉽지 않을 땐 요가를

by 골디

“참 사는 게 쉽지가 않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잠들러 가기 전 같이 사는 친구의 한숨 섞인 한 마디였다. 요새 참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싶었는데 역시 모두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보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쟁 같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었다.


최근에 요가를 일년 만에 다시 시작했다. 몇 가지 동작만으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신체적 고통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맞아, 이렇게 아팠었지. 이렇게 안됐었지. 이렇게 힘들었지.’ 라자카포타아사나(한 쪽 다리가 앞에 있는 왕 비둘기 자세)를 두 다리 번갈아 바꿔가며 수련하다가 결국 하누만아사나(다리를 앞 뒤로 찢는 동작)을 시도했을 때, 엉덩이를 받춰줄 보조블럭 한 개로는 턱도 없는 땅과 내 엉덩이의 거리 격차에 좌절하면서도 나는 애써 재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그 맘을 알기라도 하듯이 요가 선생님께서는 이 상황에 대해 ’신기하다, 재밌네, 즐겁다‘라고 생각하길 바란다고 하셨다. 집에 가서 절대 하지 않을, 지금 이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자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전굴(앞쪽을 향하여 기운 상태)하는 자세 중인데 공중에 한참 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각자 자기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하시며 플라톤의 명언을 인용하셨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라.’ 이 말이 내가 평소에 하던 그 생각, 바로 삶이 전쟁같다는 생각과 참 닮아있으면서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이 먹고 사는 일이 주는 힘겨움, 나만의 고통에 매몰되어 있었다면 선생님은 타인에 대한 연민에 가까웠다. 각자의 힘듦을 이해하고 서로를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또 선생님께서는 매트 위의 고통은 나 자신만이 알고 나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하셨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세의 완성, 그에 따르는 고통과 무게. 그 점이 인생과 참 닮았다고 그래서 요가를 좋아한다고도 하셨다. 나만이 오롯이 견뎌야 하는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먹고 사는 일이 걸린 문제가 아니어서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모든 순간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고군분투라니 너무 멋지잖아! 다른 매트와 비교할 필요도 없으니 눈을 감고 정확한 느낌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통과 즐겨냄이 공존하는 나만의 전투가 끝나가고 수업의 마지막에 이르러 시체처럼 등을 대고 길게 누워 있는 사바아사나를 하며 쉬는 시간이 있다. 나는 이 자세와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고요하고 편안한 요가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누워있는 이 때를 수업 중 가장 고대한다. 그런데 이번엔 선생님께서 특별히 가요를 틀어주셨다. 로이킴의 ‘살아가는 거야’라는 곡이었는데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당신이

나의 아픔을 마주하면

무너져 내릴까 봐 지켜주는 거야.

또 견디어 보는 거야.

사실 나도 그리 강하진 않아.


인생을 그저 게임 한 판 하듯이 가볍게 생각하던 이십대를 지나, 이게 사실 장난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나이.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가는 인생의 무게를 알게 되는 삼십대가 되었다. 세상에 생각보다 더 미세하게 다양한 삶의 양식이 존재하고 모두 자기만의 고민과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또 어떤 사람들은 정말 마음 아픈 일들을 겪는다는 당연한 사실도, 그리고 그런 일들이 도처에서 혹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불행이라는 것도. 이제서야 마음에 와닿는다. 다른 사람의 무게도 가늠할 수 있게 된 지금, 나의 괴로움보다는 모두가 치르고 있을 자신만의 전투를 존중하고 타인의 인생의 난이도를 쉽게 속단하지 않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적어도 요가하는 시간만큼은 세상은 나에게 그렇다. 다들 사는 게 쉽지 않을 땐 요가를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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