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눈 내리는 것이 정말 좋았다. 눈싸움에 눈사람도 만들고 눈썰매도 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공부에 힘들지만 철부지에 청춘이 흘러넘치는 열혈남아들에게 아직 눈은 설레고 장난기 넘쳐흐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존재였다.
대학교 때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술 마실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샘이었다.
군대에서 눈이 오면 '아, 쓰레기가 또 내리는구나' 바로 삽 들고 제설작업에 나가야 했다. 대민지원도 많이 나갔었는데...
직장이 생기고 운전을 하면서부터는 눈이 온다 하면 전날부터 운전을 걱정해야 했다. 직장에선 또 퇴근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아이가 생기면서는 어릴 땐 넘어질까 감기 들진 않을까 걱정해야 했고, 조금 크고 나서는 아이들과 밖에서 놀아줘야 하는 약간은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이가 들며 눈에 대한 호감은 점점 내려갔던 것 같다. 아이들 같은 동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게 눈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던 30대 중반에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의 사람들은 겨울 산행을 유독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겨울은 등산의 최대 성수기라 생각한다.
등산카페에서 가장 좋아하는 날씨예보는 대설주의보, 대설경보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눈이 많이 온다 하면 걱정과 우려가 많겠지만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설 다음 날 연차를 그렇게 많이 쓴다. 겨울철만 되면 후기글이 넘쳐난다. 눈에 미친 사람들이 다 모여있다.
흔히 '산뽕'을 맞는다고 한다. 산에서 보는 눈이 얼마나 예쁘다고... 생각하던 나도 겨울 산행을 다녀오고 '산뽕'을 제대로 맞았다.
안 그래도 조용한 세상인 산속에서 하얗게 눈들이 들러붙은 나뭇가지들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때론 거센 바람에 베일 것만 같은 날카로운 눈들이 로프며 난간이며 붙어있을 때도 있지만 그 또한 멋들어진다.
또 언제 눈이 내리려나...